[매경] 콩밭에 간 의원들 마음 국회로 돌려야

2015-12-18

콩밭에 간 의원들 마음 국회로 돌려야


그 옛날 소작인들이 주인집 논보다는 자투리땅에 심어둔 자신의 콩에 온통 신경이 쓰이는 것을 두고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라는 말이 유래했다. 지금 국회의원들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말이다. 주인(국민)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법안 처리에는 전혀 마음이 없고 오로지 내년 총선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 안철수 전 대표의 탈당으로 야당 의원들은 자신들의 거취를 두고 복잡한 이해득실에 머리를 쥐어짜고 있고, 여당은 여당대로 내년 총선에 적용할 공천 규칙을 어떻게 짤지를 두고 치열한 신경전과 셈법에 날을 지새우고 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비롯한 경제활성화 법안, 노동개혁 관련 5대 법안, 테러방지법안 등 시급한 국가 현안 과제 법안만이라도 처리하라는 주인(국민)의 뜻은 안중에도 없다. 국회의원 배지를 다시 다는 것에만 오로지 관심이 있다.


물론 여당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야당의 협조 없이는 법안 처리가 어려운데 야당이 개점휴업 상태에 있으니 법안을 처리할 도리가 없다고 항변할 것이다. 야당은 야당대로 법안의 내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므로 보다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할 것이다.


모두 일고의 가치도 없는 변명에 불과하다. 이들 법안의 쟁점에 대해서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논의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검토를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으며, 여당 역시 진정으로 법안 처리에 대해 강력한 의지가 있다면 보다 적극적인 대야 협상과 투쟁을 해야 할 것인데 지금의 모습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다. 여당은 국회선진화법 탓, 야당은 집안싸움 탓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국회가 국민을 실망시킨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19대 국회는 국회무용론이 나올 정도로 최악의 성적이다. 19대 국회의 법안 가결률은 32%에 불과하다. 발의된 법안 3건 중 1건도 채 처리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회선진화법 탓이 가장 크다. 야당의 동의 없이는 쟁점법안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야당이 버티면 법안 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이 20대 국회에서 개정될 가능성도 없어 보인다. 국회선진화법 개정안 자체가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본회의에 상정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법안 가결률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그나마 통과된 법안의 질적 수준도 낙제점이다. 경제 관련 법안들 중 68%가 반(反)시장적이라고 한다. 정부가 아무리 규제를 찾아 단두대로 처형해도 국회가 법률을 제정 또는 개정해서 규제를 만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정부입법과 마찬가지로 의원입법에 대해서도 엄격한 규제심사 절차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국회는 입법권 침해를 운운하며 제도의 도입을 반대한다. 정부 부처들이 앞에서는 규제를 풀고 뒤로는 의원입법의 느슨한 처리절차를 노리는 이른바 청부입법, 우회입법을 활용한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다. 꼭 필요한 법안은 처리하지 않고 만들어서 안 되는 법안은 청부를 받아 만든다면 그것은 이미 국민의 대표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지난 헌정사상 우리는 무려 19번이나 속았다. 더 이상 속아서는 안 된다. 국회 본연의 임무가 무엇인가? 법률을 만들고 손질하는 것이다. 법안 처리를 정치적 투쟁의 도구로 삼는 구시대적 사고를 가진 후보자가 또다시 20대 국회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국회의 의사결정 메커니즘은 합의와 조정, 그리고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야 한다. 18대 국회 마지막 날 다수결의 원리를 국회 스스로 포기하는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킨 의원들 상당수가 또다시 19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국회선진화법 탓을 하며 발의 법안 중 겨우 3분의 1만을 처리하였다. 지금이라도 국회의원들은 19대 국회 마지막까지 콩밭에 마음을 뺏기지 말고 주인(국민)이 바라는 법안 처리에 최선을 다하는 유종의 미를 거두길 간절히 당부한다. 


매일경제 2015. 12. 18 매경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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