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사교육에 주도권 뺏긴 교육부

2016-05-13

사교육에 주도권 뺏긴 교육부


세상 모두가 사교육 광풍에 휩쓸리더라도 자신만은 학교 프로그램대로 아이를 키우겠다는 교육철학을 갖고 있던 동료 여교수가 학부모 모임을 다녀와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의 오판으로 이제 초등학생인 딸이 이미 세상의 경쟁에서 밀려나 버린 것 같아 미안함과 걱정스러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고 했다. 명문대학에 입학하려면 외고, 과고, 영재고 같은 특목고를 가야 하고, 특목고에 진학하려면 중학교 내신을 잘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때 이미 중학교 과정을 선행학습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의 일부 이야기일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어디를 손보아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지금 공교육은 사교육에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겨 버렸다.


TV 건강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이런 비타민도 섭취해야 하고 저런 영양제도 먹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건감염려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사교육 시장이 그렇다. 영어, 수학, 논술, 과학, 예체능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기에 이들 학원에 다 보내야 할 것 같다. 영어, 수학은 선행학습도 해야 하고 내신 점수도 잘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선행학원과 내신학원을 따로 보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방과 후 밤늦게까지 학원을 순례하고, 부모들은 가계소득의 대부분을 사교육에 지출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살인적 학원 프로그램을 거쳐야만 명문대학에 갈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보편적(?) 인식에 대해 교육당국은 실증적 반론을 제기해보기 바란다. 


만약 정부의 주장처럼 교육당국을 신뢰하고 공교육을 충실히 수행하기만 하면 명문대학에 쉽게 들어갈 수 있음에도 사교육 시장이 교육염려증을 유발해서 학부모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라면 이러한 사교육 시장은 정부의 강한 규제와 사회적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반면 공교육 프로그램에만 의존하면 명문대학 진학이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정부는 지금 학부모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어느 쪽을 더 신뢰하고 있는지는 지금의 사교육 시장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설사 정부의 주장이 사실이라도 국민이 이를 신뢰하지 못하고 사교육에 끌려 다니고 있는 자체가 정책의 실패다.


복잡한 대학입시 제도, 갈수록 벌어지는 특목고와 일반고의 격차, 특목중의 등장 등으로 학부모들은 커다란 혼란 속에 빠져 있는데 교육당국은 창의교육, 자유학기제, 팀별 문제해결식 수학교육 등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실험적 정책을 쏟아내고 있으니 사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 아이들은 교육당국의 정책이나 학자들 교육이론의 실험 대상이 아니다. 이미 노벨상 수상자를 여럿 배출한 일본마저도 교육 경쟁력을 강화하고 노벨상 수상자를 더 많이 배출하기 위해서는 문부성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학교가 직접 공부(?)를 시켜야 한다.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는 평가(?)만 하는 지금의 교육시스템으로는 공교육은 있으나마나 한 존재가 아니라 차라리 없어져야 할 대상이 될 수 있다. 다소 과격한 주장으로 마음 상한 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우리 교육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사실에는 모두 공감할 것이다. 교육당국은 정책을 바꾸고 새로운 제도를 내놓기보다 우선 우리의 민낯부터 철저히 진단해야 한다. 교육당국은 학부모의 시각에서 사교육에 주도권을 빼앗긴 우리 공교육의 현주소를 읽어 보아야 한다. 이상론적인 교육정책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사교육 시장의 기형적 과열 원인부터 진단해서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 저출산 원인 중 하나가 갈팡질팡하는 교육정책 때문이라는 국민 정서부터 교육당국은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매일경제 2016. 5. 13 매경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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