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국회 권한 강화가 곧 민주주의 발전 아니다

2016-06-17

국회 권한 강화가 곧 민주주의 발전 아니다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장 좌석에 전자태그(RFID)를 부착해서 의원들의 출석률과 재석률을 실시간 기록하고 국민들에게 공개하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의원들의 회의 참석률이 항상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19대 국회 때 의원들의 상임위 출석률은 80%, 본회의 재석률은 60% 정도였다.


상임위 출석률이 80% 정도면 그리 나쁜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국회 상임위에 한 번이라도 참석해 본 사람이라면 이 숫자가 얼마나 의미 없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자기 발언 순서가 되면 보좌관의 전화를 받고 잠깐 출석해서 자기 할 말만 하고 나가버리는 일이 다반사다. 본회의 재석률이 60%라면 거의 두세 번에 한 번은 출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습을 하지 않았거나 공부에 관심이 없으면 수업이 정말 지루하고 학교에 가기 싫어진다. 안건에 대해 공부를 아예 하지 않거나 설사 공부를 해도 이해도가 떨어지는 국회의원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 국회 출입기자들의 이야기다. 이것이 국회의 현실이고 국회의원들의 현주소다.


그런데 국회, 특히 국회의원들의 권한은 그 자세와 능력에 비해 너무나 크다. 국정감사와 국정조사, 예결위 상설화,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 설립, 인사청문회 대상 확대, 국회선진화법 도입 등 그동안 강화된 국회의 권한을 몇 가지만 간추려 보아도 이 정도다.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해 지난 19대 국회에서 여야는 모두 한목소리로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약속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않은 채 자동 폐기되었다.


20대 국회가 개원했다.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퍼포먼스가 재연될 것으로 보인다. 개원 초기에 반짝했다가 또 유야무야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국회의원의 특권 내려놓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국회'의 권한에 대한 재검토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국회의원'의 특권에 대해서는 부정적 시각을 가지면서도 '국회'의 권한 강화에 대해서는 커다란 저항 없이 지지를 보내는 경향이 있다. 국회의 권한이 강화될수록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국민주권이 강화되는 것으로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국회는 정부가 일을 할 수 있도록 그 근거가 되는 법률을 제정하고, 정부가 법률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그 권한 역시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정도만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국회는 역할 수행에 꼭 필요한 권한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일단 기회가 있을 때마다 권한을 강화하려고 한다. 법률을 제정하는 위치에 있으니 이러한 국회의 움직임을 통제할 방법도 없다. 오히려 여야가 합의하여 국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 마치 커다란 정치적 타협을 한 것처럼 포장되고, 국민들 역시 국회의 권한이 강화되면 국민주권이 향상되는 것처럼 지지를 보내니 국회의 권한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상시청문회법이다. 상시청문회 개최가 가져올 파장이나 영향, 예상되는 문제점 등에 대해 국민들이 진지하게 검토해 볼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않고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오히려 상시청문회를 반대하는 것이 마치 반민주적인 것처럼 정치적 프레임을 만들어서 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국회의 권한이 민주주의 발전과 국민주권에 기여하고 정부 견제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면 당연히 강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잘못된 정치적 프레임에 갇혀서 국회의 권한 강화를 무조건 지지하고 이를 반대하는 것은 비민주적인 것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라도 국회가 권한을 새롭게 강화하려 하면 그 권한이 진정 역할 수행에 필요한 것인지,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우리가 직접 검토하고 국회를 감시하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국회 권한 강화가 곧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매일경제 2016. 6. 17 매경의 창

http://news.mk.co.kr/newsRead.php?no=433088&year=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