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지금은 정치 지도자와 정치꾼 구별할 때

2016-11-11

지금은 정치 지도자와 정치꾼 구별할 때


사상 초유의 사태로 대한민국은 지금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국민들은 조속한 국정 정상화를 위해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하야든 탄핵이든 2선 후퇴든 이미 대통령의 정상적인 국정운영을 기대하긴 어렵다. 국가적 위기다.


불안한 국민들이 기댈 곳은 어딘가? 정치지도자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소 알 수 없었던 사람의 본성이 급박한 순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을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지금 위기의 순간, 우리는 누가 대한민국의 진정한 '정치지도자'인지 아니면 '정치꾼'에 불과한 사람인지 구별해 낼 수 있는 기회다.


'촛불 민심' 뒤에 숨어서 대안 없는 자극적 선동만을 일삼는 사람은 '정치꾼'에 불과하다. 좌초된 대한민국호가 다시 항해할 수 있도록 정치권력을 결집하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정치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한 지금,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득실만을 따지는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할 것이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하야와 퇴진을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 특히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들은 대통령의 거취에 대한 주장보다는 지금의 국가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저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고 거리를 행진할 때가 아니다. 무조건 하야나 2선 후퇴를 주장할 것이 아니라 하야나 2선 퇴진 후 국정을 정상화할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을 마련해서 국민들에게 내놓아야 한다. 


이러한 사태를 촉발한 대통령이 결자해지의 자세로 국정 혼란을 불식시킬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이미 그것을 기대하기가 어렵고 국민들이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니 국민들은 정치지도자에게 해법 제시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이러한 국가위기를 초래한 것도 아닌데 왜 나에게 해법을 내놓으라고 하느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국민들이 정치인들에게 국정을 수습할 수 있는 해법을 내놓으라고 감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정치인들을 '정치꾼'이 아닌 '정치지도자'로 믿고 싶기 때문이다. 좌초된 대한민국호의 운명을 하야나 2선 후퇴라는 대통령의 결심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의 결심과는 별개로 국회는 탄핵 절차를 진행하고 개헌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지금은 단순히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는 정치행위만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회가 탄핵과 개헌이라는 예측 가능한 헌법행위를 해야 국민들이 조금은 안심할 수 있고 혼란을 줄일 수 있다. 


무한 경쟁의 글로벌 시대에는 내치(內治) 못지않게 외교가 중요하다. 국가안보는 더욱 중요하다. 북한 핵실험 이후 대북 제재안이 표류하고 있고 또 언제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있을지 모르는 물안한 상황이다. 


게다가 미국의 새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가 선출되고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국들의 총선도 예정되어 있다. 빠르게 변해가는 국제 정세 속에서 외교·안보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도 커다란 걱정이다. APEC나 아세안+3, G20 등과 같은 정상회의에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하면 많은 외교적 손실을 보는 것이 관례다. 경제를 비롯한 국내 현안은 물론이고 외교·안보에 대한 공백이 장기화될수록 우리가 부담해야 할 손실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기적 본성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정치지도자들도 인간인지라 자신의 전도에 미칠 영향을 따져보는 것은 인지상정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한민국호가 난파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본성을 뛰어넘는 이성과 사명감이 절실히 필요하다. 자신이 대한민국의 '정치꾼'이 아니라 '정치지도자'라고 생각한다면 정략적 이해득실을 버리고 머리를 맞대고 대한민국을 구할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해법을 찾아 국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매일경제 2016. 11. 11 매경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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