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통신사 '제로레이팅 서비스'의 문제

2017-07-28

통신사 '제로레이팅 서비스'의 문제


휴가철 고속도로 정체, 참 짜증나는 일이다. 통행요금을 다 냈는데도 이렇게 차가 막히는 책임을 누군가에게는 물어야만 짜증이 좀 식을 것 같다. 차를 너무 많이 만든 자동차 제조사 탓인지, 수요에 맞추어 도로를 미리미리 넓히지 않은 도로공사 탓인지, 아니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우리 잘못인지? 우리는 적지 않은 금액의 자동차세를 냈고 통행요금도 냈다. 그렇다면 당연히 돈을 받은 정부나 도로공사가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순리다. 


이런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한국 통신망의 사정이 이와 비슷하다. 이동통신망을 통한 데이터 사용량이 2012년에 비해 거의 4배 증가했다. 급증하는 트래픽으로 인해 서비스 품질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사실상 곤란하기 때문에 이용자의 불만과 짜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데이터를 너무 많이 생산·유통하는 콘텐츠 또는 플랫폼 사업자 탓인가, 미리미리 네트워크를 고도화하지 않은 네트워크 사업자(통신사) 탓인가, 많은 콘텐츠를 이용하는 우리의 잘못인가? 우리는 통신사에 매달 적지 않은 통신망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그렇다면 돈을 받은 통신사가 네트워크를 고도화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네트워크 사업자와 정부는 네트워크에 흐르는 모든 데이터를 동등하게 취급하고 사용자, 내용, 플랫폼, 장비, 전송 방식에 따른 어떠한 차별도 해서는 안 된다는 망 중립성(Net Neutrality)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도로를 달리는 모든 차량을 동등하게 취급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이다. 급행료를 내면 전용차선이나 갓길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근래 통신사들의 제로레이팅(zero-rating) 서비스도 같은 맥락에서 상당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제로레이팅이란 통신사와 인터넷서비스 사업자가 소비자의 콘텐츠 사용에 소요되는 통신비용을 미리 정산해서 소비자는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통신비를 감면받는 서비스다. 예를 들어 SK텔레콤 가입자가 11번가 서비스를 이용할 때 데이터 사용료를 면제해주는 것을 말한다. 


통신사들은 제로레이팅이 통신비 인하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얼핏 보기에는 일리 있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런데 좀 더 내용을 들여다보면 통신비 인하 효과보다는 시장질서를 교란시키는 부정경쟁적 측면이 더 크다. 통신비를 감면받기 위해서는 통신사가 지정하는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므로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소비자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터넷쇼핑이나 게임 등을 구매할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이나 학생들에게는 더욱 도움이 안 된다. 국가가 사관학교 학생들의 학비를 부담한다고 해서 이것이 대학생 학비 경감 대책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설사 소비자가 대부분의 서비스를 제로레이팅으로 감면받는다 해도 그 통신비용은 결국에는 광고비용이나 상품 또는 서비스 생산원가로 전가되어 종국적으로는 소비자가 부담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제로레이팅 서비스는 통신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통신비 인하 효과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 속에는 시장의 공정경쟁을 방해하고 독점을 합법화하는 독소적 문제점이 숨어 있다. 통신사의 자사 또는 관련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나 미리 통신요금을 지불한 인터넷 사업자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통신비를 감면해 준다면 소비자들은 이러한 서비스를 우선 이용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이들 사업자의 시장지배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소비자의 선택권은 제한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와 제로레이팅 협약을 할 것인지는 통신사가 주도적으로 결정할 것이므로 통신사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 간의 공정한 거래는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렵다. 제로레이팅 요금제가 진정으로 통신비 인하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부정경쟁을 방지하고 소비자에 비용을 전가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매일경제 2017. 7. 28 매경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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