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촛불 여론재판’ 말 나오지 않게 해야

2017-08-04

‘촛불 여론재판’ 말 나오지 않게 해야


‘법관(法官)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良心)에 따라 독립(獨立)하여 심판한다.’ 대한민국헌법 제103조의 규정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독립’이란 정치권력, 여론의 공격적 분위기, 조직 내부의 압력 등으로부터 독립해 오로지 ‘헌법과 법률의 정신’에 따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양심’이란 법관 개인의 주관적 가치와 정치적 이념을 말하는 게 아니라, 가치 중립적이고 보편적 이념에 따른 법관의 ‘직업적 양심’을 뜻한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법관이 자신의 직업적 양심을 지키려면 독재 권력의 위협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실체가 불분명한 공격적 여론 때문에 법관이 오직 증거와 법리(法理)만으로 양심적 판단을 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분위기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담당 판사의 신상을 털어 본인은 물론 가족들에게까지도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댓글로 상처를 입히는 게 현실이다. 그것도 모자라 ‘라면 도둑’에게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느니, 조 전 장관의 남편과 사법연수원 동기라느니 하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 무참하게 인신 공격을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법관에게 오직 증거와 법리에 따라 재판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오히려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라면 판결’을 한 적도 없고, 조 전 장관의 남편과 10년 이상의 기수 차이가 있어 전혀 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그 누구도 이를 바로잡거나 사과하지 않아 많은 사람이 진짜로 믿고 있을지 모른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재판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이 부회장 혐의의 핵심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금품을 수수하고 대가성 청탁을 했는지, 즉 ‘뇌물공여죄’가 성립하는지 여부다. 이 부회장에 대한 피고인 신문만 50차례나 된다고 한다. 일반적인 형사재판 절차와 비교해보면 상당히 많은 신문이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건이므로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재판부가 그만큼 신중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판에서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경영권 문제나 정유라 씨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도 정 씨에 대한 승마 지원은 자신이 결정하고, 이 부회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박영수 특검은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자신했지만, 여전히 결정적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형사소송법 제307조는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하고,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검과 이 부회장 측이 제출한 증거와 주장, 그리고 그에 대한 증명이 이 부회장의 범죄사실을 의심할 여지 없이 인정할 정도면 유죄일 것이며, 그렇지 못하다면 무죄가 된다.


형사소송법 제308조는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법관이 오로지 증거의 증명력으로 유·무죄를 판단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촛불 여론재판’이 되지 않아야 한다.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 돈이 없고 힘이 없어 무죄가 유죄가 되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처럼, 재벌이나 사회고위층이라 해서 증거가 부족해도 처벌하는 것이 사회정의는 아니다. 재판에 여론이 개입하는 여론재판은 양날의 검이다. 누구에게는 유리하고 누구만을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칼날의 방향에 따라 누구나 다칠 수 있는 무서운 유혹이다. 여론재판은 없어야 한다.


문화일보 2017. 8. 4 포럼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708040107391100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