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거세지는 국정감사 폐지론

2018-11-16

거세지는 국정감사 폐지론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지난달 30일 끝난 국회 국정감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700곳이 넘는 기관과 400명이 넘는 증인을 불러 국정감사를 벌였으나 언론을 통해 이미 보도되었던 것보다 특별히 더 밝혀진 것도 없어 보인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국정감사에 채택된 일반 증인은 총 2478명. 그중 1998명이 출석했으며, 이들 중 10%에 해당하는 200명 이상이 단 한마디도 못하거나 단답형 답만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증인이나 참고인은 국정감사에 필요한 사항을 검증하기 위해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증인을 불러놓고 필요한 질문을 하기보다는 "사과할 용의가 있느냐" "다짐을 말해보라" "노력과 계획을 말해보라" 등 훈계나 호통을 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권력 분립의 원칙상 국회는 국가의 예산을 심의·확정하고 국정을 감시·통제하는 권한을 가진다. 그런데 국정을 감시·통제하는 수단으로 국정감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선진국들 중 우리나라처럼 기간을 정해놓고 모든 국가기관을 일제히 감사하는 제도를 두고 있는 나라는 없다. 국회가 국정 전반을 감시·통제하는 것은 본회의와 각 상임위원회를 통해 상시적으로 가능한 일이다. 국정 수행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면 국정조사를 하거나 청문회 등을 통해 얼마든지 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특별히 문제 삼을 일이 없음에도 일괄해 행정권의 모든 국정 수행을 일시에 조사하는 것은 행정부의 자율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권력 분립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다. 피감기관인 행정 각 부처와 공공기관들은 국회의원들의 자료 요구 등 국정감사 준비에 매달리다 보니 국감이 끝날 때까지 해야 할 일에 거의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그야말로 국정감사로 인해 2~3개월 동안 국정이 거의 마비돼버리는 것이다.


그 영향이 행정 부처와 공공기관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기업이나 민간에까지 미치다 보니 국정감사로 인한 일손 공백은 거의 전 국가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국정감사를 통해 불법적이거나 비효율적 국정 수행이 발굴·개선된다면 이러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불가피할 수 있다. 하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이벤트식 정치 국감만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으니 국감 무용론이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정치권은 국감을 시작하기 전에는 정책국감, 민생국감을 하겠다고 약속하지만 막상 국감이 시작되면 의원들은 한 건 또는 한 방을 노리는 정치 이벤트에 혈안이 된다. 


국감으로 얻는 이익은 거의 없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만 드는데도 국감이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헌법에 그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절대권력의 입맛대로 국정을 운영하는 일이 있었기에 신분이 보장된 국회가 국정감사 활동을 벌임으로써 전횡과 불법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디어 발달과 시민사회의 성숙으로 국정감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국정의 전횡과 불법을 감시·통제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럼에도 국회가 헌법을 이유로 국정감사를 폐지 또는 축소하지 않는 것은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제도를 포기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비록 헌법에 규정된 제도라 할지라도 그 효용성이 매우 떨어진다면 국회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해 그 운영을 얼마든지 축소할 수 있다. 헌법은 국회에 국정에 대한 감사 권한만을 부여했을 뿐 그 구체적 운영은 법률에 위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감기관을 줄여 집중 감사를 하거나 국감 기간을 대폭 줄일 수도 있다. 국회가 자신들의 권한을 줄이는 법 개정을 할 리 없다.


헌법 개정 시 국정감사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당장 헌법 개정이 어렵다면 우선 국감의 효율화를 위한 제도 개선이라도 해야 한다.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피감기관을 선정하고, 증인 또는 참고인도 필요한 인원만 엄선해 충분한 질의와 진술이 가능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제도 개선이 빨리 이루어져 내년 국정감사는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국감, 민생국감이 되기 바란다.


매일경제 2018. 11. 16 매경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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