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직 대법관 봉변과 司法독립 퇴행

2018-09-14

전직 대법관 봉변과 司法독립 퇴행


 대법원은 13일 행정과 의회 권력의 압력을 물리치고 사법 독립을 지켜낸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취임 70주년이 되는 날을 맞아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특정 연구회 출신 법관이 대거 고위직에 발탁되면서 ‘코드 사법’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시민단체에 의한 사법부(司法府)의 중립성 훼손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특히, 전직 대법관에 쏠리는 국민적 관심은 이러한 우려를 잘 보여준다.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 활동을 하면 평균 3년에 100억 원 이상을 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도를 넘는 전관예우에 대해 국민의 우려가 커지자 최근 퇴임한 대법관들은 대학에 석좌교수로 가기도 하고, 김선수 대법관은 아예 퇴임 후 변호사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기도 했다. 


사법부 7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퇴임 후 시·군 법원의 ‘시골판사’를 지원한 대법관도 있다. 박보영 전 대법관이다. 그가 광주지법 순천지원 여수시법원 소액사건 전담판사로 다시 근무하게 됐다는 소식은 미담 수준을 넘어 전관예우로 멍든 대한민국의 사법부를 쇄신하는 전기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주었다.


그런데 미담의 주인공인 박 판사의 첫 출근길이 많은 국민의 바람과 달리 우울하고 참담한 길이 되고 말았다.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철도노조 호남지방본부, 민중당 전남도당 등에 소속된 30여 명이 ‘쌍용차 정리해고 판결 사과하라’며 시위를 벌인 탓이다. 그 과정에서 일부 언론은 박 전 대법관이 떠밀리고 안경이 바닥에 떨어지는 등 수난을 겪었다고 한다. 시위대를 뚫고 박 판사가 간신히 출근하는 과정은 아수라장이었고, 취임식도 하지 못했다. 


시위대는 박 판사가 주심이던 대법원 3부의 2014년 판결에서 ‘쌍용차 해고자 153명의 정리해고는 부당하다’며 제기한 소송의 원고 승소 원심을 파기 환송한 이유를 밝히고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쌍용차 정리해고 판결이 있은 지 1년 뒤에 양승태 사법부의 이른바 ‘재판 거래’로 의심되는 법원행정처 문건이 작성된 만큼 이 재판을 ‘양승태 사법 농단’으로 몰아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판사의 판결이 언제나 국민의 법감정과 일치하는 건 아니다. 때에 따라선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판결도 있다. 하지만 헌법은 사법부의 독립을 선언하고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은 심급 제도를 통해 바로잡도록 하고 있다. 재판에 대해 학술적 비판을 하거나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건 민주사회에서 당연히 있을 수 있지만, 물리적 행동이나 위협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사법부는, 행정권이나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뿐만 아니라 특정의 압력단체나 정치 세력으로부터의 독립도 매우 중요하다. 판결에 불복하는 단체와 정당 당원들이 출근하는 법관의 사퇴를 요구하며 법관을 위협하는 것은 사법부 및 법관의 독립에 매우 위험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법관이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는 것은 헌법상 법관에게 주어진 권리라기보다는 오히려 법관이 어떠한 내·외부적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헌법 이념에 따라 심판하라는 국민의 명령이고, 헌법상 주어진 의무다. 따라서 법관의 독립성을 주장하면서 오히려 법관에게 심리적 위협을 주는 집단적 행동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를 위축시키고 법치주의를 훼손할 뿐이다. 


70년 역사의 대한민국 사법부가 정치·사회적 위협을 극복하고 독립성과 중립성을 의연히 지켜 나가기를 바란다.  


문화일보 2018. 9. 14 포럼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09140107391100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