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 위헌 법안 거부할 대통령 필요하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동·거짓 판치는 나라는 패망
절대다수 의석 與의 입법 전횡
위헌적·反민주적 행태도 속출
대선 뒤에도 2년 더 같은 상황
마지막 장치는 법안 再議 요구
후보들의 헌법 수호 의지 중요
원래 프로파간다(propaganda)는 로마 가톨릭에서 포교를 전담하는 추기경들의 위원회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20세기 2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거짓’과 ‘선동’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포퓰리즘(populism)의 원래 어원은 대중 또는 민중을 뜻하는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요즘은 정치 지도자들이 권력과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인기영합적인 비현실적 정책을 내세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정치 전략적 수단으로 이해된다. 민주주의를 왜곡, 변질시키는 위험천만한 전략들이다.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이 판쳤던 국가는, 결국 민주주의의 실패는 물론 국민을 극심한 고통에 빠뜨렸다는 사실은 역사가 잘 말해 준다.
지난 총선에서 야당의 자중지란을 틈타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은 국가의 정치적·정책적 문제를 모두 ‘입법’으로 해결하려는 이른바 ‘입법 절대주의 전략’을 강하게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 전략이 사용됐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 국민적 관심이 큰 법안을 처리할 때면 이른바 ‘좌표’를 찍어 입을 막아 버리는 봉쇄전략을 사용했다. 건전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동산 수급의 왜곡 현상을 지적하면 마치 그것이 집 없는 서민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비인간적인 사람인 것처럼,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으로 ‘좌표’를 찍어 입을 막아버리는 이른바 ‘입법 독재’가 심심찮게 현실화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을 비판하는 것은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적폐 세력으로, ‘N번방 방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하는 것 자체가 성착취 불법 정보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것에 반대하는 안티 페미니스트인 듯이 몰아간다. 또, ‘중대재해처벌법’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산업재해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에 반대하고 기업의 이익에만 동조하는 친기업적 인사로, ‘온라인플랫폼 규제법안’의 역기능을 말하는 것은 소상공인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플랫폼 대기업의 하수인으로 매도한다.
히틀러의 독재를 경험한 유럽 국가들은, 독재 권력에 장악된 의회가 만든 법률에 따른다 해서 그것이 진정한 법치주의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생겨난 게 ‘실질적’ 법치주의다. 의회가 만들었다고 모두 ‘법률’로서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헌법에 합치되는 법률만이 진정한 ‘법률’이며, 이에 따라 국가를 운영하는 게 실질적인 법치주의요,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으로 건전한 비판이 봉쇄된 채 만들어진 법안은 헌법과 법리에 맞지 않는 위헌적 법률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지금 여당은 국민의 입을 막고 몸을 묶는 이른바 ‘봉쇄’ 법률을 계속해서 만들려고 한다. 1인 미디어나 비주류 언론들의 비판이 귀에 거슬린다고 해서 가짜 뉴스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국민과 언론을 ‘봉쇄’하려는 입법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입법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어떤 명분을 내세울지라도 명백히 위헌적이고 반민주적인 행태다.
하지만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이 입법 전횡을 해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으로 좌표가 찍혀 건전한 비판과 합리적 토론도 기대하기 어렵다. 의회의 입법 전횡을 사후에라도 막으려고 만들어진 장치가 헌법재판소다. 하지만 친여 성향의 재판관이 다수인 상황에서 헌재가 이런 최후의 보루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제21대 국회의원의 임기(2024년 5월 29일까지)가 아직 많이 남아 있어 당장 선거를 통해 국회의 의석 균형을 맞추긴 어렵다. 국회의 입법 전횡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제도적 장치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다. 대통령은 국회가 만든 법률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대선이 매우 중요하다. 3·9 대선에서는,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을 앞세운 국회의 입법 전횡을 거부권 행사로 제동을 걸 수 있는 결단력 있는 대통령이 선출돼야 한다. 국민의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처: 2022. 1. 18일자 시평
http://m.munhwa.com/mnews/view.html?no=2022011801073011000002/
[문화/시평] 위헌 법안 거부할 대통령 필요하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동·거짓 판치는 나라는 패망
절대다수 의석 與의 입법 전횡
위헌적·反민주적 행태도 속출
대선 뒤에도 2년 더 같은 상황
마지막 장치는 법안 再議 요구
후보들의 헌법 수호 의지 중요
원래 프로파간다(propaganda)는 로마 가톨릭에서 포교를 전담하는 추기경들의 위원회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런데 20세기 2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거짓’과 ‘선동’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포퓰리즘(populism)의 원래 어원은 대중 또는 민중을 뜻하는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요즘은 정치 지도자들이 권력과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인기영합적인 비현실적 정책을 내세워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정치 전략적 수단으로 이해된다. 민주주의를 왜곡, 변질시키는 위험천만한 전략들이다.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이 판쳤던 국가는, 결국 민주주의의 실패는 물론 국민을 극심한 고통에 빠뜨렸다는 사실은 역사가 잘 말해 준다.
지난 총선에서 야당의 자중지란을 틈타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은 국가의 정치적·정책적 문제를 모두 ‘입법’으로 해결하려는 이른바 ‘입법 절대주의 전략’을 강하게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 전략이 사용됐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 국민적 관심이 큰 법안을 처리할 때면 이른바 ‘좌표’를 찍어 입을 막아 버리는 봉쇄전략을 사용했다. 건전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동산 수급의 왜곡 현상을 지적하면 마치 그것이 집 없는 서민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비인간적인 사람인 것처럼,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으로 ‘좌표’를 찍어 입을 막아버리는 이른바 ‘입법 독재’가 심심찮게 현실화하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을 비판하는 것은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적폐 세력으로, ‘N번방 방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을 하는 것 자체가 성착취 불법 정보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것에 반대하는 안티 페미니스트인 듯이 몰아간다. 또, ‘중대재해처벌법’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산업재해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에 반대하고 기업의 이익에만 동조하는 친기업적 인사로, ‘온라인플랫폼 규제법안’의 역기능을 말하는 것은 소상공인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플랫폼 대기업의 하수인으로 매도한다.
히틀러의 독재를 경험한 유럽 국가들은, 독재 권력에 장악된 의회가 만든 법률에 따른다 해서 그것이 진정한 법치주의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생겨난 게 ‘실질적’ 법치주의다. 의회가 만들었다고 모두 ‘법률’로서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헌법에 합치되는 법률만이 진정한 ‘법률’이며, 이에 따라 국가를 운영하는 게 실질적인 법치주의요,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으로 건전한 비판이 봉쇄된 채 만들어진 법안은 헌법과 법리에 맞지 않는 위헌적 법률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지금 여당은 국민의 입을 막고 몸을 묶는 이른바 ‘봉쇄’ 법률을 계속해서 만들려고 한다. 1인 미디어나 비주류 언론들의 비판이 귀에 거슬린다고 해서 가짜 뉴스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국민과 언론을 ‘봉쇄’하려는 입법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다. 입법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어떤 명분을 내세울지라도 명백히 위헌적이고 반민주적인 행태다.
하지만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이 입법 전횡을 해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으로 좌표가 찍혀 건전한 비판과 합리적 토론도 기대하기 어렵다. 의회의 입법 전횡을 사후에라도 막으려고 만들어진 장치가 헌법재판소다. 하지만 친여 성향의 재판관이 다수인 상황에서 헌재가 이런 최후의 보루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제21대 국회의원의 임기(2024년 5월 29일까지)가 아직 많이 남아 있어 당장 선거를 통해 국회의 의석 균형을 맞추긴 어렵다. 국회의 입법 전횡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제도적 장치는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다. 대통령은 국회가 만든 법률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대선이 매우 중요하다. 3·9 대선에서는, 프로파간다와 포퓰리즘을 앞세운 국회의 입법 전횡을 거부권 행사로 제동을 걸 수 있는 결단력 있는 대통령이 선출돼야 한다. 국민의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처: 2022. 1. 18일자 시평
http://m.munhwa.com/mnews/view.html?no=202201180107301100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