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국민 입 틀어막는 ‘봉쇄법’ 입법 독재

2021-08-27


[문화/오피니언] 국민 입 틀어막는 ‘봉쇄법’ 입법 독재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민주주의의 근본이념인 법치주의는 국민의 대표로 구성된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따라 국가가 운영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의회가 제정한 법률에 따르기만 하면 그것이 법치주의일까? 히틀러의 독재를 경험한 유럽 국가들은 독재 권력에 장악된 의회가 만든 법률에 따른다 해서 그것이 법치주의는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생겨난 게 ‘실질적’ 법치주의라는 개념이다. 의회가 만들었다 해서 다 ‘법률’이 아니라, 헌법에 합치되는 법률만이 진정한 법률이며, 이에 따라 국가를 운영하는 게 실질적인 법치주의요,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절대과반 이상의 의석을 가진 현 여당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법률을 만들 수 있다. 설령 그것이 위헌적이고 반(反)민주적인 법률이라 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지금 여당은 국민의 입을 막고 몸을 묶는 이른바 ‘봉쇄’ 법률을 계속 만들고 있다. 지난해 5·18민주화운동을 부인하거나 비방하면 처벌하는 ‘5·18 왜곡 방지법’을 입법하더니, 양향자 의원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사실 왜곡도 처벌 대상에 포함한 ‘역사왜곡금지법’을, 김용민 의원은 독립운동에 관한 사실을 왜곡하거나 이에 동조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역사왜곡방지법’을 각각 발의했다. 또, 가짜 뉴스 규제를 명분으로 언론의 입과 손을 묶으려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강행 처리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인재근 의원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었다. 다행히 지난 25일 철회됐지만, 사실을 적시하거나 허위의 사실을 유포해 피해자, 유족 또는 일본군위안부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하면 처벌토록 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입법됐더라면,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의기억연대의 전신)에 대해 발언한 것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위안부 단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출신이며 할머니들의 후원금을 유용한 혐의로 재판 중인 윤미향 의원이 법안의 공동 발의자여서 피해자들의 공분이 더 컸다고 한다.

국민의 입을 막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독재 권력이 가장 잘하는 일이다.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임을 자부하는 현 정부가 독재 권력을 지향할 리 없다고 믿는다. 그런데 최근 여당이 발의하는 법안들은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다. 지금 여당이 야당이던 시절을 상기해 보라. 자신들이 가장 즐겨 했던 말이 ‘언론(표현)의 자유’와 ‘진실 규명’이었다. 방송이나 유력 신문들은 기득권을 대변하는 매체인 것처럼 공격하고 인터넷 등 비주류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지지층을 확장했던 게 현 정부이며 여당이다.

그런데 이제 자신들이 집권 세력이 되고 거대 여당이 되니 1인 미디어나 비주류 언론들의 비판이 귀에 거슬리는지 가짜 뉴스와 역사적 사실의 왜곡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국민과 언론을 ‘봉쇄’하려 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이미 거짓이나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때에는 처벌할 수 있는 형법 규정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나아가 특별법을 만들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그 취지가 아무리 좋다 해도 그것은 명백히 위헌적이고 반민주적인 발상이다.

‘법령이 많을수록 도둑이 늘어난다. 나라는 바름(正)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노자의 가르침을 되새기기 바란다.



출처: 2021. 8. 27 일자 칼럼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08270103391100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