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법은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2019-07-19

법은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지난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막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 이른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됐다. 이 법은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의하고, 사용자에게 이러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할 경우 사실조사, 피해노동자 보호, 행위자 조치 등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한 자에게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할 경우 사용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현대인들이 각자의 가정 못지않게 오랜 시간을 머무는 곳이 학교나 직장이니만큼 학교나 직장에서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은 너무나 힘들고 괴로운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지지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이 법의 시행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법이 금지하고 있는 행위라는 점을 명백히 한 것은 사회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어느 정도의 자정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가 꼭 법의 영역에서 처리되는 것이 능사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반복될 경우 사용자나 상사가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도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다만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직장 내 괴롭힘을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한 점, 어느 정도의 괴롭힘은 관행적으로 용인되는 직장 문화, 피해자가 괴로움을 하소연할 수 있는 창구나 절차가 미흡했다는 점 등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근절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교육과 인식 개선을 통해 직장 문화를 변화시키는 게 보다 근본적 해결책이지 법으로 규제한다고 해서 단박에 해결되는 일은 아니다. 실제 이 법도 사용자에게 필요한 조치의무만을 지우고 있을 뿐 조치의무를 강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담보수단은 없다. 단지 사회적 경각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도덕적 문제를 법의 영역으로 끌어오면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심각한 역기능이 발생할 수 있다. 일단 법의 영역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구분되고 가해자에 대한 법적 제재가 수반된다. 


따라서 직장 내 괴롭힘이 법의 문제로 전개되면 가해자든 피해자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끝까지 법적으로 다툴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법의 특성이다. 학교폭력 또는 왕따 문제도 마찬가지다. 학교폭력의 문제가 법의 영역으로 들어온 뒤부터 친구들 간의 다툼이 선생님의 중재로 서로 악수하고 화해하는 모습으로 끝나는 일은 결코 기대하기 어렵다. 가해와 피해를 구분하기 위해 법적 소송까지도 불사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도덕적 문제에 대해 법이 어느 정도 개입하는 게 바람직한지를 판단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과 법으로 제재하는 문제는 완전히 차원을 달리한다. 법은 도덕의 핵심적인 요소만을 다뤄야 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근대법 정신에 비추어 보더라도 사법기관이 도덕의 모든 영역을 감시, 감독, 지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도덕의 영역은 가능하면 국민 스스로 판단하도록 맡겨야 하고, 궁극적으로 인식과 문화의 개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최근 혐오표현규제법, 가짜뉴스규제법 등의 입법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이 역시 마찬가지다. 도를 넘는 혐오표현이나 가짜뉴스 등은 현행법에 의해서도 처벌과 구제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원론적이고 도덕적인 사항까지 법의 영역으로 통제하는 법 만능주의적 발상은 결국 우리 사회를 극심한 갈등과 대립으로 멍들게 한다. 직장 내 괴롭힘, 학교폭력, 혐오표현, 가짜뉴스 등과 같이 사회구성원이 당연히 준수해야 하는 도덕적 문제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긴 호흡으로 인식과 문화의 개선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을 통해 일거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여론에 떠밀려 법부터 만들다보면 우리나라 법이 갈수록 도덕 교과서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매일경제 2019. 7. 19  매경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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