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수사기관, 압수수색 남발 말라

2019-05-31

수사기관, 압수수색 남발 말라


우리나라 현행 법률은 대략 15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법률마다 보통 한두 개 이상의 형사처벌 조항이 있고, 조항마다 서너 개의 형사처벌 규정이 있으니 대충 잡아도 우리나라에는 형사처벌할 수 있는 범죄가 1만개 이상 존재한다. 자동차 뒤에 자전거를 매달고 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만약 매달린 자전거가 번호판을 가렸다면 형사처벌이 가능한 범죄(?)가 된다. 우리가 흔히 범죄라고 하면 아주 나쁜 짓을 하거나 흉악범만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형사처벌 조항의 홍수 속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1만개가 넘는 범죄 중 하나를 범할 가능성을 언제나 안고 살고 있다.

기업을 하다 보면 일반인보다 이런저런 것에 연루될 일이 더 많을 것이다. 물론 실수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경미하게 법을 위반한 때에는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선처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일단 범죄 혐의가 있으면 수사가 시작된다. 이때부터 검찰은 무소불위의 칼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바로 압수수색과 구속이다. 자신의 생활 터전인 집이나 회사에 수사관이 들이닥쳐 온통 난장판을 만들고 물건이나 자료들을 가져가버리면 누구나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요즘은 휴대폰을 압수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미 휴대폰은 우리 몸속 장기와 같은 존재다. 휴대폰을 빼앗기면 순간적으로 심각한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 구속영장의 청구는 사람을 더욱 움츠러들게 한다. 물론 압수수색과 구속은 법원의 영장이 있어야 한다.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할 때는 압수를 통해 입증하려고 하는 혐의 사실, 압수의 대상과 범위, 압수 장소 등을 명확히 한정해야 한다고 형사소송법에 규정돼 있다.

하지만 실제 압수수색 영장에는 '회계자료 및 입출금 거래 내역 및 통장' 등과 같이 압수 대상과 범위가 다소 애매하고 포괄적으로 기재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무리한 쌍끌이식 압수수색이 빈번히 행해지고 있다. 압수수색으로 휴대폰이나 자료들을 빼앗기는 것보다 사람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하는 것은 압수물 분석 과정에서 매우 사적인 프라이버시가 노출될 수도 있고, 검찰이 해당 사건과 전혀 관련 없지만 압수를 통해 새롭게 인지한 사유를 들어 또 다른 수사, 이른바 별건수사를 확대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단지 사람들의 근거 없는 두려움이 아니라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처럼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압수수색 여부가 오로지 수사당국의 자의적 판단에 달려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물론 수사당국은 압수수색은 수사를 위해 불가피할 때에만 법원의 영장을 통해 집행한다고 변명할 것이다. 법원 역시 철저한 심사를 통해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것은 철저하게 수사해서 일벌백계해야 하는 사건은 아예 수사를 하지 않거나 수사를 해도 압수수색은 하지 않으면서 그다지 큰 사건도 아닌 것 같은데 요란스럽게 압수수색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아 왔다.

2018년 한 해 동안 삼성 계열사에 대해 13번의 압수수색이 있었다. 올해에도 현재까지 9번의 압수수색을 했다고 한다. 매달 두 번꼴로 압수수색을 한 것이다. 잘못을 했으면 수사를 받고 수사에 필요하면 압수수색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기업의 범법행위를 감싸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문제는 매달 두 번씩 압수수색을 하는 것이 수사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는지를 냉정히 판단해 보자는 것이다. 기업의 자료 속에는 엄청난 분량의 고객정보와 영업비밀, 그리고 거래계약정보가 들어 있다. 이러한 것들을 빼앗기면 정상적인 사업을 이어갈 수 없다. 압수수색으로 개인이 '멘붕(?)'에 빠지는 차원을 넘어 기업은 그 존립이 위태로울 수 있다. 기업의 신뢰도 및 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진그룹의 경우 경찰, 검찰은 물론 11개 이상의 국가기관에서 20여 차례 압수수색을 했다고 한다. 정상적인 기업 활동이 불가능했음이 불 보듯 뻔하다.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기업의 경영과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압수수색은 매우 신중하고 엄격하게 이뤄져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수사라는 미명하에 공권력이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 일상화돼서는 안 된다.


매일경제 2019. 5. 31  매경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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