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적폐 수사, 민주주의 정립과 반대다

2018-12-13

적폐 수사, 민주주의 정립과 반대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최근 간부회의에서 “현재 진행 중인 수사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어떤 내용으로 구현돼야 할 것인지를 정립해 나가는 과정”이라면서 “이 과정에서 검찰 스스로도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면서 올바르게 소임을 완수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했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 행태를 바라보는 국민은 문 총장이 말한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아스럽다. 


대통령, 대법원장, 국회의원, 재벌 그 누구든 범법행위를 하면 예외 없이 수사받고 자신이 잘못한 만큼 처벌받는 이상적 법치주의가 실현될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묵은 적폐를 청산하다 보면 어느 정도의 불편함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찰의 적폐 수사가 전 정권과 전전(前前) 정권에 집중되고, 그 과정 역시 무리수를 반복하다 보니 지금 검찰의 행태가 법치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각골지통(刻骨之痛)의 과정이 아니라, 정치검찰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일,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 등을 불법 사찰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고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투신해 숨졌다. 현 정부 들어 검찰의 적폐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피의자는 이 전 사령관이 세 번째다. 지난해 10월 국정원 소속 변호사 정 모 씨에 이어 변창훈 서울고등검찰청 검사가 유명을 달리했다. 검찰은 지난해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과 관련해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을 구속했다. 김 전 실장이 보석으로 풀려나자 검찰은 석 달간 추가 수사 끝에 지난 3월 영장을 재청구했다. 하지만 영장은 기각됐다. 


검찰은 지난 11일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라고 지시하고, 6·13 지방선거 과정에서 허위 주장을 한 혐의 등으로 이재명 경기지사를 기소했다. 그러나 ‘혜경궁 김씨’ 트위터 계정 소유주 의혹과 관련해 이 지사의 부인 김혜경 씨는 불기소 처분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해당 아이디(ID)가 이 지사 집에서 인터넷에 접속했다는 기록을 찾아냈지만, 검찰은 ‘의심은 가지만 직접 증거가 없어 이 지사 부인으로 특정하기 어렵다’며 경찰 의견을 뒤집고 불기소 처분했다. 


의심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원칙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원칙이 왜 김관진 전 실장의 수사에는 지켜지지 않고 이 지사 부인에게만 적용되는지 쉽게 납득이 안 된다. 그러니 많은 국민이 ‘만약 이 지사가 야당이나 전 정권 인사였다면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며, 집에서 인터넷 접속이 이뤄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범죄자 취급을 받았을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정치검찰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정치검찰이 되지 말라고 주문하는 건 어불성설일 수 있다.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을 통해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보직까지 일일이 좌지우지하는 현 인사 시스템에서는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창 시절 공익의 수호자인 검사를 꿈꾸며 검사가 되기 위해 밤잠을 설쳤던 순수한 열정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검사들 스스로 검찰을 바로세우려는 몸부림이라도 쳐야 한다. 


검사를 길러내는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한 사람으로서 제자들이 정치검찰이 돼 가는 것을 보는 건 너무나 슬픈 일이다. 검찰의 정치화는 검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두에 불행한 일이다. 검찰 조직이나 간부들의 정치화를 막을 순 없더라도, 일선 검사들만이라도 공익의 수호자로서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문화일보 2018. 12. 13 포럼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812130107311100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