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규제혁신, 말은 쉬워도 실행은 어렵다

2022-06-16


[문화/오피니언 시평] 규제혁신, 말은 쉬워도 실행은 어렵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尹정부 일제히 규제 혁파 강조
전략회의-추진단-심판관 신설
관료주의 못 바꾸면 또 물거품

민주당과 수구좌파 반발 예상
규제 강화할 의원 입법도 우려
새로운 규제평가 시스템 절실


지난 14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윤석열 정부의 규제혁신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규제심판제도’의 도입이다. 기업과 국민이 규제와 관련한 어려움을 건의했을 때 소관 부처가 이를 받아들일지를 결정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분야별 민간 전문가로 ‘규제심판관’을 구성해 규제 개선 권고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규제심판관이 국제 기준과 이해관계자 및 부처의 의견 수렴 등을 토대로 규제의 적정성을 판단하는데, 이때 소관 부처가 규제의 필요성이나 타당성을 증명하지 못하면 그 규제를 폐지 또는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대통령 주재로 중요 규제혁신 사안을 결정하는 ‘규제혁신전략회의’가 신설되고, 기업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덩어리 규제’를 혁파하기 위해 퇴직 공무원과 연구기관 및 경제단체 합동으로 ‘규제혁신추진단’을 설치해 운영한다고 한다. 기존 규제샌드박스(한시적 규제 유예·면제)를 개편해 이해 갈등으로 진전이 없는 규제는 중립적인 전문가가 참여토록 하며, 법이 특별히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이른바 네거티브 규제를 확대하겠다고 한다.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정부 부처 공직자들의 기본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과거에도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규제개혁을 최우선 정책 과제로 내세웠다. 그렇지만 번번이 기대했던 규제개혁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규제를 ‘힘’으로 생각하는 정부 부처의 기본 인식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규제의 수를 줄이라고 하자 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꿔 겉보기엔 규제를 줄인 것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종래의 규제가 그대로 작동되게 하거나, 하나의 허가 사항을 여러 개로 쪼갠 뒤 그중 몇 개를 없앤 것을 규제개혁의 성과로 치부하던 때도 있었다. 총량 규제, 덩어리 규제 등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도 결국 해당 부처는 어떻게 해서든 규제를 유지하려는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앞에서는 규제를 없애고 뒤에서는 국회와 시민사회단체를 이용(?)해 규제를 다시 만들어내는 행태는 정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았다.

특히, 직전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통령과 정부가 앞에서는 규제개혁을 약속하고 뒤에서는 당시 여당과 친정부 시민단체들의 반대를 빌미로 슬그머니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 지금 국회의 구성을 보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이 자신들이 여당일 때도 규제혁신에 소극적이었는데, 이제 와서 적극적으로 변할 리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낡은 교조주의적 논리를 앞세워 대통령의 규제혁신 정책을 강하게 반대할지도 모른다.

혁신(innovation)은, 묵은 풍속·관습·조직·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꿔서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헌법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라는 기본 구조를 존중하면서 구태와 구습을 타파하는 ‘질’적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혁신’이다. 혁신을 부정하는 것은 ‘수구’다. 진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혁신을 거부한다면 그들 역시 수구다. ‘수구좌파(?)’의 반발 때문에 정부의 규제혁신 정책이 위축돼선 안 된다. 

정부가 시행령·시행규칙·고시 등에 있는 규제를 폐지하고 개혁하는 데 온갖 노력을 다해도 국회가 법률을 제정해서 또 다른 규제를 만들어 버리면 정부의 노력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 정부가 규제를 신설·강화하는 법률안을 제출할 때는 규제의 타당성 및 부작용에 대한 까다로운 사전 심사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국회가 제출하는 법률안은 전문적 규제 심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규제 법안이 의원입법, 청부입법(?)으로 제정된다.

윤 정부의 규제혁신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규제 평가 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규제의 수와 양을 평가하는 정량적 평가 시스템이 아닌 전문가가 실제 규제혁신의 성과를 정성적(定性的)으로 평가하는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규제심판관’과 마찬가지로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규제평가단’이 규제혁신의 결과가 실제로 작동되는지 그 성과를 피드백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규제심판관과 규제평가단의 상호 보완적 환류 과정을 통해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규제혁신이 되기를 바란다.



출처: [문화/오피니언 시평]  2022. 06. 16일자.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206160103301100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