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잦은 개편은 국정 혼란만 초래한다

2012-12-22

잦은 개편은 국정 혼란만 초래한다


현행 정부조직법은 1948년 7월 17일 법률 제1호로 제정·시행된 이후 지금까지 무려 69차례의 개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개정은 권한과 소관 업무를 조정하거나 다른 법률의 개정에 따라 이루어진 소소한 것들이었으나 정부조직의 틀을 완전히 바꾼 전면 개정도 수차례 있어왔다.


대한민국 출범 당시에는 내무부, 외무부, 국방부, 재무부, 법무부, 문교부 등과 같은 정통적·학술적 행정 분류 방식에 따른 정부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지식경제부, 여성가족부, 해양수산부 등과 같은 융합형 정부조직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과거 상공부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동력자원부, 상공자원부, 통상산업부, 산업자원부로 각각 명칭과 조직이 개편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체육청소년부, 정보통신부 등은 아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고, 교육부는 과학부·노동부와 기능이 합쳐졌다 떨어지기를 반복해 지금은 전문가들조차도 연구개발(R&D) 업무가 교육과학기술부의 사무인지, 과학기술위원회의 사무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잦은 개편의 대상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역시 행정법 전공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부처의 이름을 옳게 쓰고 있는 것인지 일일이 인터넷으로 검색해 확인을 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형편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차기 정부의 조직개편 논의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집권세력의 이념에 따라 큰 정부를 지향할 수도 있고 작은 정부를 추구할 수도 있기에 어찌 보면 정권 교체에 따른 정부조직 개편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처럼 정부 부처가 통째로 없어지거나 전에 없던 새로운 부처가 신설되는 정부조직 개편은 단순한 정부조직의 개편이 아니라 거의 혁명에 가깝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레임덕이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빨리 오는 것도 잦은 정부조직 개편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올해 하반기부터 거의 모든 부처들은 정책개발, 법령개정, 계획수립 등의 업무를 중단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조직이 어떻게 개편될지도 모르는데 지금 이러한 일들을 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통령이 바뀌면 새롭게 개편된 조직을 정비하고 적응하는 데 1년 넘게 허비하다가 겨우 적응하려고 하면 대통령 선거가 다시 돌아와 또 1년 가까이 개점휴업을 한 상태에서 차기 정권을 바라보는 국정의 행태가 반복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커다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정책 수립과 집행은 실험의 대상이 아니다. 대통령 당선자나 일부 참모의 머릿속 생각에 따라 실험적으로 한번 해보자는 식의 정부조직 개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근본적인 제도 개선이 없는 한 이러한 불행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차제에 헌법을 개정할 때 정부조직을 헌법 규정화하는 것을 제안해 본다. 헌법에 대통령에 관한 규정이 있으므로 대통령 보좌기관으로서의 정부조직을 헌법화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전혀 불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헌법의 경직성으로 인해 정부조직이 상황 변화에 발 빠르게 즉응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이는 대통령실 또는 총리실의 기능을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잦은 정부조직 개편은 국정을 혼란스럽게 하고 안정적인 국가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중앙일보 2012. 12. 22 논쟁

https://news.joins.com/article/102408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