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CCTV 만병통치약 아니다

2015-01-30

CCTV 만병통치약 아니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으로 폐쇄회로(CC)TV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을 빨리 제정하라는 여론이 거세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 부모들이 CCTV에라도 의지하고 싶은 절박한 심정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실제로 CCTV의 유용성은 참으로 크다. 범죄 예방은 물론이고 심리적 불안 제거에도 효과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이런 까닭에 현재 CCTV에 대한 국민 여론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왜 주민 동의 없이 CCTV를 설치했느냐?’보다는 ‘왜 우리 동네에는 CCTV를 설치해주지 않느냐?’는 민원이 압도적으로 많다.


CCTV에 대해 가장 우호적인 나라는 영국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 7월 런던 지하철·버스 자살폭탄 테러로 사상자 700여 명이 발생한 이후 CCTV 설치가 기하급수로 증가했고 현재 약 600만대, 인구 10명당 1대꼴로 CCTV가 설치돼 있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영국 여론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2008년부터 CCTV 설치 비용으로 우리 돈 약 1조원을 투입했는데 실제 범죄 예방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지 검증할 만한 실증적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심각하고 긴급한 문제에만 CCTV 등 감시카메라를 사용할 수 있도록 CCTV 정책에 보다 차분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이유다.


이처럼 CCTV는 매우 유용하지만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도 있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그때그때 여론을 좇아 정책이 결정돼서는 안된다. 여러 상충되는 이익과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차분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는 게 CCTV 정책이다. 당장 어린이집 학부모들은 CCTV 설치 의무화를 요구하지만 어린이집 교사들은 노동 감시 또는 인권침해를 주장하며 반대하고 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CCTV는 이해관계의 조정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다.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국회와 정부는 지금까지보다 좀 더 세련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우리가 흔히 인터넷실명제라고 하는 제한적 본인확인제와 같은 우(愚)를 또다시 범해서는 안된다. 만약 어떤 신문사가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본인 확인을 거쳐야만 게시글이나 댓글을 쓸 수 있도록 본인확인제를 채택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이러한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서비스를 이용할 것인지를 이용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인확인제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게 헌법재판소의 결정이다. 다시 말해서 제한적 본인확인제 자체가 위헌이 아니라 이러한 것을 법적으로 의무화한 것이 위헌이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공립이 아닌 사설 어린이집에 대해 CCTV 설치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분명 있다. 법적 의무화라는 규제적 방식보다는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라는 것이다. 어린이집 학부모들이 학부모총회를 통해 CCTV 설치를 요구하면 어린이집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CCTV를 설치하도록 법을 제정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민간에 대해 CCTV 설치를 법적으로 강제한 것은 아니므로 저항과 위헌 소지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영세한 어린이집 사정을 고려해 CCTV 설치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집 문제는 무상보육의 구조적 한계, 교사 처우 개선 등이 종합적으로 해결돼야 할 과제이지, CCTV가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다. 이 기회에 국회와 정부는 보다 차분하고 신중하게 그러나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역기능을 최소화하면서 유용성은 극대화할 수 있는 CCTV 종합대책을 수립하기 바란다.


매일경제 2015. 1. 30. 매경의 창

http://news.mk.co.kr/column/view.php?sc=30500008&year=2015&no=96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