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피해자 권리보호制의 성공 조건
법무부와 대검찰청, 경찰청은 16일부터 수사과정에서 범죄 피해자에게 권리와 지원 제도를 의무적으로 설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엄격히 말하면 이러한 범죄 피해자 권리 고지 의무화는 검찰과 경찰의 정책으로 시행되는 게 아니라, 지난해 10월 개정된 ‘범죄 피해자 보호법’이 이날부터 발효되기 때문에 시행되는 것이다. 이 제도는 범죄 피해자의 보호 및 지원이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범죄 피해자의 권리에 관한 정보 등을 범죄 피해자에게 적극적으로 제공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범죄 피해자란, 범죄로 인해 피해를 본 자와 그 가족 등을 말한다. 앞으로 검찰과 경찰은 이러한 범죄 피해자에게 장애인·여성·아동·노약자·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의 경우 신뢰 관계자(부모·배우자·직계친족 등)와 함께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 실명이 아닌 가명으로 조서(調書)를 작성할 수 있다는 사실, 형사 절차의 진행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사실, 증인으로 출석할 경우 비공개 심리를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 재판에서 진술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 들을 서면으로 알려주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범죄 피해 구조금과 치료비·생계비, 주거 지원 등을 포함한 경제적 지원, 심리 치료 지원 및 무료 법률 지원 등에 대한 안내도 해야 한다. 그동안 수사 당국이 범죄자에겐 미란다 원칙을 근거로 체포 당시 변호사 선임권과 진술거부권 등을 반드시 통보해 줬지만, 정작 범죄 피해자에게 권리를 알려주는 제도는 없었다. 이런 점에서 이 제도는 ‘범죄 피해자에 대한 미란다 원칙’이라 할 수 있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권리 통보를 법적으로 명문화한 정책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최초라고 한다. 이를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너무나 당연히 인정돼야 할 범죄 피해자의 권리와 지원 제도가 그동안 얼마나 부실하게 운영됐으면 이처럼 당연한 ‘사실’을 고지하는 것을 법으로 의무화까지 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범죄 피해자가 미성년자, 지적장애자인 경우에는 신뢰 관계자가 동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실천하지 않는 검사나 경찰이 전혀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가명 조서란 성폭력 피해자 등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사람들이 가명으로 조서를 쓸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하지만 실제 경찰 조사에서 거의 활용되지 않아 거의 사문화(死文化)했던 제도다. 한 여성 경찰관이 성폭력 피해자 가명 조서 382건을 작성해 검찰에 보내면서 이 제도가 다시 활성화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여성 경찰관을 제외한 다른 경찰들은 이 제도를 알지 못했거나 알고도 활용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범죄 피해자에게 권리나 지원 제도에 대해 하나하나 자세히 문서로 알려 주겠다니 참으로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범죄 피해자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일 못잖게 검찰·경찰이 스스로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실천하는 자세와 노력이 중요하다. 권리나 지원에 관한 정보의 고지를 의무화할 수는 있으나 형식적이 아니라 정성껏 알려줘야 한다는 점까지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올해 2015년을 ‘범죄 피해자 보호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세계 최초로 도입된 ‘범죄 피해자에 대한 미란다 원칙’이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니라, 자랑거리가 될 수 있도록 검찰과 경찰은 범죄 피해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2015. 4. 16. 포럼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5041601033111000003
범죄피해자 권리보호制의 성공 조건
법무부와 대검찰청, 경찰청은 16일부터 수사과정에서 범죄 피해자에게 권리와 지원 제도를 의무적으로 설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엄격히 말하면 이러한 범죄 피해자 권리 고지 의무화는 검찰과 경찰의 정책으로 시행되는 게 아니라, 지난해 10월 개정된 ‘범죄 피해자 보호법’이 이날부터 발효되기 때문에 시행되는 것이다. 이 제도는 범죄 피해자의 보호 및 지원이 적극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범죄 피해자의 권리에 관한 정보 등을 범죄 피해자에게 적극적으로 제공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범죄 피해자란, 범죄로 인해 피해를 본 자와 그 가족 등을 말한다. 앞으로 검찰과 경찰은 이러한 범죄 피해자에게 장애인·여성·아동·노약자·외국인 등 사회적 약자의 경우 신뢰 관계자(부모·배우자·직계친족 등)와 함께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 실명이 아닌 가명으로 조서(調書)를 작성할 수 있다는 사실, 형사 절차의 진행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사실, 증인으로 출석할 경우 비공개 심리를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 재판에서 진술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 들을 서면으로 알려주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범죄 피해 구조금과 치료비·생계비, 주거 지원 등을 포함한 경제적 지원, 심리 치료 지원 및 무료 법률 지원 등에 대한 안내도 해야 한다. 그동안 수사 당국이 범죄자에겐 미란다 원칙을 근거로 체포 당시 변호사 선임권과 진술거부권 등을 반드시 통보해 줬지만, 정작 범죄 피해자에게 권리를 알려주는 제도는 없었다. 이런 점에서 이 제도는 ‘범죄 피해자에 대한 미란다 원칙’이라 할 수 있다.
범죄 피해자에 대한 권리 통보를 법적으로 명문화한 정책은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최초라고 한다. 이를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너무나 당연히 인정돼야 할 범죄 피해자의 권리와 지원 제도가 그동안 얼마나 부실하게 운영됐으면 이처럼 당연한 ‘사실’을 고지하는 것을 법으로 의무화까지 했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범죄 피해자가 미성년자, 지적장애자인 경우에는 신뢰 관계자가 동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실천하지 않는 검사나 경찰이 전혀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가명 조서란 성폭력 피해자 등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사람들이 가명으로 조서를 쓸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하지만 실제 경찰 조사에서 거의 활용되지 않아 거의 사문화(死文化)했던 제도다. 한 여성 경찰관이 성폭력 피해자 가명 조서 382건을 작성해 검찰에 보내면서 이 제도가 다시 활성화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여성 경찰관을 제외한 다른 경찰들은 이 제도를 알지 못했거나 알고도 활용하지 않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범죄 피해자에게 권리나 지원 제도에 대해 하나하나 자세히 문서로 알려 주겠다니 참으로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범죄 피해자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일 못잖게 검찰·경찰이 스스로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실천하는 자세와 노력이 중요하다. 권리나 지원에 관한 정보의 고지를 의무화할 수는 있으나 형식적이 아니라 정성껏 알려줘야 한다는 점까지 법으로 강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올해 2015년을 ‘범죄 피해자 보호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세계 최초로 도입된 ‘범죄 피해자에 대한 미란다 원칙’이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니라, 자랑거리가 될 수 있도록 검찰과 경찰은 범죄 피해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문화일보 2015. 4. 16. 포럼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504160103311100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