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총기사고가 정말 게임중독의 결과일까

2015-07-31

총기사고가 정말 게임중독의 결과일까


1982년 4월 26일 현직 경찰이 총기를 난사해 무려 95명의 사상자를 낸 믿기지 않는 사건이 있었다. 예비군 무기고에서 소총 2정, 수류탄 6발, 실탄 129발을 들고 동료 경찰과 우체국 전화교환원을 살해하고 마을을 순서대로 돌면서 수류탄과 총으로 주민을 무참하게 살해한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30년도 더 지난 기억하기도 싫은 옛날이야기를 다시 꺼낸 까닭은 만약 이 사건이 근래에 일어났다면 이 경찰관의 게임중독 이야기가 분명 나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실제로 2005년 6월 19일 전방에서 김 모 일병이 GP 안에 수류탄 1발을 던지고, 소총을 난사해 1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 터지자 언론들은 김 일병이 여러 개 게임 사이트에 가입하는 등 게임에 중독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 기사를 내놓았다. 


미국에선 총기 사건이 빈번하다. 총격으로 인한 사망자는 하루 평균 24명에 달하며 매년 8000명 이상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 발생 원인을 게임 탓으로 돌리려는 분위기는 당연히 존재한다. 그런데 지금 예를 든 사건들은 모두 '총기'라는 도구에 의해 벌어진 일이다. 당연히 총기에 대한 관리나 규제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게임중독 문제로 이슈가 옮겨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총기에 대한 규제가 불가능하거나 규제에 대한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 비난의 대안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게임을 두둔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요즘 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규제 입법이 도를 넘고 있음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인터넷을 통해 불법 저작물, 불법 정보, 불법 게임물, 음란물 등이 유통되고 돌아다니면 이러한 것들이 유통되거나 돌아다니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고 불법 행위자에 대한 행정적·형사적 제재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인터넷이라는 특수성을 내세워 직접 불법 행위를 한 자에 대한 제재나 규제 방식보다는 인터넷서비스제공자(OSP)에 대한 간접 규제를 분별 없이 도입하고 있다. 


불법 행위자를 직접 색출해 단속하고 처벌하는 것보다 이들 정보가 유통되는 경로를 규제하는 게 당국 입장에서는 쉽고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런데 피규제자 입장에서는 수인할 수 없는 과도한 규제일 수밖에 없다. 이미 저작권법 정보통신망법 게임산업진흥법 아동청소년보호법 성매매방지법 등 수많은 법률에서 OSP에 법적 책임과 행정벌 또는 형사벌을 지우고 있다. 최근에는 부당 사재기에 의한 허위 도서 판매량 정보에 대해서도, 난자·정자의 불법 매매에 대한 정보에 대해서도, 심지어는 국어 정보화에 대해서도 OSP에 책임을 지우는 입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이처럼 OSP에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입법 태도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규제 수단으로 행정벌이나 형사벌을 너무 쉽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형벌은 살인이나 절도처럼 '하지 않아야 할 것(금지 의무)'을 저지른 자를 처벌하는 수단이다. '해야 할 것(작위 의무)'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 의무의 이행을 직접 명하거나 금전적 제재를 통해 심리적·간접적으로 의무 이행을 촉구하는 것이 법의 정신이다. 


그런데 OSP에 온갖 '파수꾼'의 의무를 지우고서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형사처벌을 하겠다는 발상은 적어도 법치국가의 법 원리와는 맞지 않는다. 규제, 특히 행정적·형사적 제재는 인과성과 상관성을 꼼꼼히 따져서 부과해야 한다. 목적 실현의 수월성을 이유로 가혹한 규제 설계를 해서는 안된다. OSP에 대한 규제 입법 현황을 꼼꼼하게 다시 살펴서 불합리한 규제는 풀고, 향후 입법에서도 규제 수월성에 함몰돼 OSP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양산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매일경제 2015. 7. 31 매경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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