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기고] '청문회 혁신' 없이 국가혁신 힘들다

2014-07-27

[기고] '청문회 혁신' 없이 국가혁신 힘들다


대한민국에서 총리나 장관 등 고위 공직자가 되려면 3단 허들을 넘어야 한다. 첫째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실시하는 인사검증, 다음은 언론을 비롯한 여론의 벽, 끝으로 국회 인사청문회다. 고위 공직자의 국정수행 능력과 자질을 검증하는 인사검증 절차와 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인사청문 절차를 정쟁의 수단으로 삼고 신상털기에 몰입하는 것은 제도의 원래 취지에 전혀 맞지 않다.


어느 정도 중요한 인사가 마무리된 시점에 또다시 인사청문 문제를 제기하는 까닭은 대부분의 국민이 인사청문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는 지금이 제도 개선을 위한 적기이기 때문이다. 공직 후보자에게 일반인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의혹만으로 후보자를 마녀사냥하듯이 벼랑 끝으로 내모는 것은 검증이 아니라 폭력이다. 


의혹에 대해 변명의 기회를 주고 그 변명에 대한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검증`이다. 인사청문회까지 간 후보자에게는 변명의 기회라도 주어지지만 언론과 여론의 벽에 갇힌 후보자에게는 변명의 기회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낙마한 후보자나 인사검증을 잘 못한 인사책임자를 두둔하고자 함은 결코 아니다.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들 중 인사청문회 제도를 두고 있는 나라는 미국, 필리핀 등 매우 예외적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공직자 7800여 명이 의회의 인사청문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인사청문 미통과율은 2%에 불과하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미국이 이처럼 인사청문 미통과율이 낮은 까닭은 사전에 인사검증이 철저히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정부의 인사검증과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동일한 검증 항목과 기준을 가지고 인사검증을 하기 때문에 미통과율이 낮은 것이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공직자의 행위로 인한 책임은 모두 대통령에게 돌아가기 때문에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적 소양을 갖췄는지 정도를 검증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인식의 합의가 정부와 국회 사이에 있다. 


실제로 미국의 인사검증 항목은 개인과 가족의 배경, 직업 및 교육적 배경, 세금납부 사항, 범칙금 등 경범죄 사항, 전과 기록사항으로 한정되어 있다. 


우리처럼 후보자를 발가벗기는 신상털기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인사검증 항목과 기준에 대해 정부와 국회, 특히 야당의 생각이 전혀 다른 것 같다. 우리도 이제는 후보자의 공직수행능력과 자질검증이라는 인사청문회 제도의 본질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우선 정부와 국회가 진지한 토론과 합의를 통해 후보자 검증을 위한 항목과 기준부터 명확히 설정하고 그 항목과 기준에 따라 후보자를 검증하는 인사청문제도가 정착돼야 한다. 검증 항목이나 기준에 대한 정부와 여야 간 시각적 차이도 문제지만 국회의원 등 정치인 출신 후보자와 비정치인 후보자에 대한 검증 기준이 다른 것도 매우 유감스럽다. 


인사청문제도가 실시된 이후 국회의원 등 정치인이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후보자가 낙마하여 공석 중인 교육부 장관에도 결국 정치인이 지명됐다. 


자신의 직무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능력, 경험, 전문지식 등을 갖추고 있는지, 자신의 사리사욕보다는 공익을 우선시하는 품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검증하는 것이 바로 인사검증이고 인사청문회 제도의 본질이다. 


국회는 인사검증의 본질과 목적에 부합하는 인사청문회가 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위해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국력을 소진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인사검증이 아니라 옥석을 가려 능력 있는 인재를 발굴하는 생산성 있는 인사청문회가 되어야 한다. 


매일경제 2014. 7. 27 매경의 창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4&no=1035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