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마구잡이' 의원입법 막을 규제심사 도입을

2015-03-12

'마구잡이' 의원입법 막을 규제심사 도입을


요즘 `규제`는 암덩어리에 비유되는가 하면 단두대(기요틴·guillotine)로 처단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단순한 처방과 수술만으로는 결코 규제 개혁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 표현들이다. 박근혜정부만이 규제 개혁을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했던 것은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행정쇄신위원회를 만들어 약 6000건의 규제를 개선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규제개혁위원회를 발족해 1만5000여 개에 달했던 규제 수를 절반으로 줄였다.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규제 개혁을 국가 현안 과제로 인식하고 정책을 추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일성으로 규제 개혁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천명했고 지금까지 그 어떤 정부보다 강도 높은 규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2014년까지 10%, 2017년까지 20%의 규제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고, 이미 지난해 11월 말 현재 2000여 건의 규제가 개선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자리 창출과 투자 활성화를 위한 경제활동 규제는 목표치 10%(987건)를 초과해 995건이 개선되거나 폐지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처럼 강력한 규제 개혁 노력과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나 기업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규제 개혁 성과가 여전히 저조한 까닭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커다란 원인은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실질적인 규제 개혁을 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규제`는 `법`이라는 형식에 의해 신설 또는 폐지되는데, 대통령령·부령 등을 관할하는 정부보다는 법률을 제정하는 국회나 조례를 만드는 지방자치단체가 더 큰 입법권한을 갖고 있어 이들의 협조 없이는 실효성 있는 규제 개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국회가 인허가나 인증 제도와 같은 규제를 법률로 신설해버리면 정부나 규제개혁위원회가 이미 만들어진 규제를 개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의 규제 개혁 요청을 무시하고 조례를 개정하지 않으면 여전히 규제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지난 2년간 전국 228개 지자체 중 자치법규 규제 개선 실적이 단 한 건도 없는 지자체가 무려 56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자치부와 법제처가 법제협력관을 지자체에 파견해 `자치법규 입법 컨설팅`을 지원하겠다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지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국회의 태도다. 정부가 법률안을 제출할 때는 반드시 규제의 타당성과 부작용에 대한 사전 심사를 거친다. 하지만 의원 제출 법률안은 전문적 규제 심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제19대 국회가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정부 제출 법률안은 269건, 의원 제출 법률안은 795건이 통과됐다. 의원입법이 세 배 가까이 많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계류 중인 법률안은 의원 제출 법률안이 8353건으로 정부 제출 법률안(353건)의 20배가 넘는다. 계류 중인 8000건이 넘는 의원 제출 법률안에 우리가 모르는 규제가 얼마나 숨어 있을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규제가 포함된 의원 발의 법률안에 대해서도 정부 제출 법률안 처리 절차와 비슷한 정도의 규제에 대한 영향평가와 심사가 사전에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2013년 9월 이런 내용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의안번호 1906793)이 이한구 의원에 의해 발의됐다. 하지만 제출 후 이 법안 처리에 대해 정치권은 전혀 관심이 없다. 정부가 아무리 규제를 줄여도 국회가 특별한 규제 통제 시스템 없이 계속해서 규제를 만든다면 국민이 체감하는 규제 개혁은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지금이라도 국회는 규제의 출발점이 되는 법률의 제정 단계부터 규제 통제가 체계적으로 작동될 수 있도록 입법 시스템을 개혁해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매일경제 2015. 3. 12. 매경의 창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5&no=2387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