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고가외제차 수리비 배상 제한 필요한 까닭

2015-05-21

고가외제차 수리비 배상 제한 필요한 까닭


현재 우리나라에 등록된 자동차가 2000만대가 넘는다고 한다. 2000만대가 넘는 자동차가 돌아다니다 보면 크고 작은 사고가 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법은 운행되는 모든 자동차에 대해 보험에 가입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런데 보험에 가입하고서도 운전자들을 여전히 불안하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외제차 등 고가 자동차들이다. 외제차는 고가일 뿐만 아니라 수리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그만큼 배상책임액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저가 차량의 차주가 가해자인 경우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과실 비율이 0(zero)%가 아닌 한 저가 차량의 보험 가입자가 외제차 등 고가 자동차 보험 가입자를 보조하는 매우 불합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지경이니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외제차 등 고가 자동차와의 접촉사고를 피하기 위해 외제차가 갑작스러운 차로 변경이나 끼어들기를 해도 일단 피하고 본다. 내키지 않는 부당한 양보를 한 운전자는 불쾌할 수밖에 없고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분개할 수도 있다. 일부 몰지각한 외제차 운전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은근히 즐긴다. 필자 역시 운전 중 이러한 불쾌감을 적지 않게 경험했다. 그런데 그저 소극적으로 피하기만 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보험사기의 수단으로 고가 외제차가 자주 이용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외제차의 경우 수리 기간이 길기 때문에 보험사는 수선 기간 동안 제공되는 렌터카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미수선수리비를 주는 것이 업계의 관행이라고 한다. 미수선수리비는 차량을 곧바로 수리하지 않고 수리비와 부품 교체 비용 등을 추정해서 그 추정액을 미리 현금으로 주는 보험금을 말한다. 이를 악용해 오래된 연식의 수입차를 구해 일부러 사고를 내는 보험사기가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연간 보험사기 금액이 4조7000억원대라고 한다. 국민 1인당 10만원 가까운 보험료를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다. 단순히 보험 부담이나 손해배상 책임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일부 몰지각한 외제차 등 고가차 운전자의 횡포를 두고 사회정의의 문제로까지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그것이 제도적 맹점에 기인한 것이라면 충분히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외제차와의 접촉사고`에 작지 않은 부담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지난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자동차보험료를 가장 많이 오르게 하는 요인`을 물은 결과 응답자 중 34%가 외제차의 과도한 수리비라고 답했다. 또 보험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자동차보험 가입자의 60% 정도가 대물배상 금액을 2억원 이상으로 가입했다고 한다. 


정치권에서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난 12일 홍철호 새누리당 의원이 교통사고 발생 시 사고의 경중과 관계없이 차량가액에 따라 배상 부담을 지우던 문제를 개선하는 `교통사고 손해배상책임 제한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차대차 교통사고에서 자동차의 시가가 일정한 기준 금액을 넘으면 대물손해 의무보험금의 5배 이내에서 배상액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올해 1월 법무부가 주최한 `국민행복법령 만들기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학생들이 제안한 법안을 토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법안을 제안한 학생들은 외제차 등 고가 자동차에 대한 대물배상책임의 한도를 제한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하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대물배상 보험료가 낮아지는 대신 고가 차량 보유자는 차량가액에 상응하는 보험료를 부담하게 돼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보다 진지한 공론화를 거쳐 입법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매일경제 2015. 5. 21. 매경의 창

https://opinion.mk.co.kr/view.php?sc=30500117&year=2015&no=489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