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투명한 정보공개로 현대판 음서제 뿌리뽑자

2015-09-04

투명한 정보공개로 현대판 음서제 뿌리뽑자


최근 국회의원 자녀들에 대한 사내 변호사 특혜 채용 의혹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사내 변호사는 일반 신입 직원과 달리 한두 명 정도를 특별한 절차 없이 특별채용 형식으로 뽑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채용 과정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특혜 의혹은 항상 제기될 수 있다. 하물며 그들이 국회의원 자식이고 어떤 이유인지 지원 요건마저 급작스럽게 변경된 정황이 보인다면 의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노동조합 간부들마저도 자식 취업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년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100대 기업 중 단체협약에 따라 소위 '고용세습' 조항이 포함된 기업이 무려 11곳에 이른다고 한다. 


현대경제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은 아무리 노력해도 신분 상승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보도가 있을 때마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 나기는 어렵다" "우리 사회에 계층 상승 사다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조적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무인도에 버려진 사람을 죽게 하는 것은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희망을 잃었을 때라고 한다. 개인이나 사회가 유지·존속되는 것은 오늘 비록 힘들어도 내일 밝은 태양이 뜰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훌륭한 정치 지도자들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청년들의 희망을 앗아가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노동자 권익을 대변해야 할 노조 간부들이 청년 구직자들의 희망을 앗아가는 것은 너무나 불행한 일이다. 


고려 시대 고위 관직을 지낸 관리의 아들에게 벼슬을 내리는 음서제가 있었다. 지배세력의 지위를 대물림하려는 귀족계급의 정치적 산물이었다. 사학자들은 음서제가 고려 멸망의 커다란 원인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고려 망국의 원인이 됐던 음서제가 은밀하게 부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계층 상승의 사다리 노릇을 했던 것이 고시 제도다. 외무고시는 이미 폐지됐고 사법시험은 조만간 존폐가 결정될 것이며 행정고시는 개방직을 확대하려는 개편안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물론 고시 제도 폐지를 곧바로 음서제 부활인 것처럼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이번 국회의원 자식들에 대한 사내 변호사 특혜 채용 의혹을 사법시험 존치의 논거로 활용해서도 안된다. 사법시험 존폐 문제는 이와는 전혀 별개 사안으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종래까지 발생하지 않았던 변호사 채용 특혜 의혹이 근래에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로스쿨 입학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음서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이 많다. 전혀 확인된 바 없고 있어서도 안될 일이다. 하지만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만을 탓할 일은 아니다. 


모든 의혹은 정보 부재에서 시작된다.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의혹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변호사시험 점수를 공개하지 않다가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자 시험 점수는 공개하되 석차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한다. 로스쿨 입학 성적은 당연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로스쿨 입학부터 변호사시험 점수, 사내 변호사 채용까지 어떠한 정보도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의혹을 제기한 사람만 비난할 수는 없다. 나름 비공개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역기능이 있을지라도 정보는 공개하는 것이 옳다. 


입학·채용 등에 대한 정보를 완전히 공개함으로써 불필요한 의혹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근원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또한 실력자들 스스로 음서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정보는 공개돼야 한다. 이 기회에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 현대판 음서제의 은밀한 부활 움직임을 초기에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매일경제 2015. 9. 4 매경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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