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안심번호’의 근본적 문제 4가지

2015-10-02

‘안심번호’의 근본적 문제 4가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안심번호 국민공천’이 최근 세간의 커다란 관심사가 됐다. 진영 논리나 계파 간의 이해관계를 일단 접고, 우선 안심번호 자체에 대한 기술적·제도적 검토부터 해 볼 필요가 있다. 안심번호란, 가상의 전화번호를 사용함으로써 실제 전화받는 사람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는 시스템을 말한다.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제는 한마디로 전화 여론조사를 통해 국회의원 선거의 후보자를 공천하겠다는 것이다.


안심번호를 활용한 국민공천제는 조직선거 등 부정선거를 차단하고 국민의 의사를 직접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정당의 후보자를 결정하는 데 국민의 세금이 지출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여론과 다른 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비교적 경쟁력이 떨어지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이른바 역선택 가능성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앞으로 여야가 국민공천제의 시스템을 어떻게 가져갈지 아직까지 구체화된 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문제를 놓고 비생산적인 논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안심번호 자체에 근본적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첫째, 이동통신사가 고객의 휴대전화 번호를 안심번호로 전환해 선관위 등에 제공하는 것은 개인정보의 목적 외 이용으로서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저촉될 수 있다. 물론 법률을 제정해 안심번호의 전환 및 제공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면 가능할 수 있으나 이 역시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정보 주체의 동의를 얻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만약 고객의 동의를 얻도록 한다면 안심번호의 익명성 메리트는 사라져 버릴 것이다.


둘째, 데이터의 정확성을 담보할 수 없다. 휴대전화 가입자의 주소가 실제 지역구와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다. 또한, 주소가 바뀌어도 이를 일일이 통신사에 알리는 가입자는 드물다. 주소의 현행화가 생각보다 철저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또, 가입자와 실제 사용자가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어서 연령·성별·직업·소득계층 등의 선별 기준이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결국, 안심번호 데이터는 대통령선거와 같은 전국적 여론조사 방식에는 몰라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국회의원 후보자 여론조사에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셋째, 이동통신사가 가입자 중에서 연령·성별·직업·소득계층 등의 선별 기준에 따라 표본을 어떻게 추출할 것인지에 대한 기술적 방법이나 시스템에 대한 검증이 불가능하다. 임의조작이나 통신사 직원의 불법행위를 검증할 방법 역시 없다. 물론 정보 유출에 대한 감시도 곤란하다. 이를 선관위나 정당이 관여하거나 검증하기 위해 가입자 정보를 열람하는 것은 현행법상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넷째, 만약 안심번호를 단 한 번의 여론조사에만 사용하고 폐기한다면 사후에 여론조사의 정확성에 대한 검증이 불가능할 것이며, 그렇다고 이를 보관한다면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어떠한 방식을 택하더라도 문제점을 내포하게 된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본인의 신청에 따라 통신사가 발급하는 안심번호와 달리, 여론조사에 사용하기 위해 고객의 동의 없이 안심번호를 추출해 선관위 등에 제공하는 것은 법 위반 가능성을 포함,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정치권은 감정적인 공방에 날을 세우기 전에 안심번호 자체에 대한 문제점 검토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


문화일보 2015. 10. 2 포럼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510020107391100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