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갓양'을 아시나요?

2015-10-09

'갓양'을 아시나요?


'갓양, 걸조, 걸바, 안습, 솔까말, 뻐정, 넘사벽, 흠좀무….'


외래어가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젊은이들이 거의 매일 사용하고 있는 말들이다. 이들이 쓴 게시글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에 떠도는 '비표준 국어대사전'이라는 황당한 사전(?)을 찾아봐야 한다. 참고로 '갓양'이란 신(god)과 서양을 합친 조어로 서양문물을 찬양하는 은어다.


지금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일상에 사용하고 있는 언어들은 민족적 정체성마저 위협할 정도로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SNS 등에서 '문자'로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글자 수를 줄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대에도 은어는 있었다. 젊은이들이 그들만의 은어를 사용함으로써 기성세대와의 구별을 통한 자기들만의 동질감을 느끼려는 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은어'가 '언어'의 전부가 된 적은 없었다. 온라인은 물론이고 실제 오프라인 생활 언어에서도 오로지 인터넷 은어와 욕설만으로 모든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방송매체, 특히 인터넷 광고가 이러한 현상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 인터넷 은어를 상세히 소개하거나, 이러한 은어를 알아야 마치 깬 사람인 것처럼 왜곡하는 오락 프로그램이 심심찮게 방송되고 있다. 젊은이들이 국어를 '순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보통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만이라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지도할 필요가 있다. 학교와 가정, 특히 방송이 더욱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국어의 '푸대접'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다. 요즘 대학에서는 '영어 강의'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이 전공을 불문하고 졸업을 위해서는 영어 강의를 일정 학점 이상 이수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사립대학은 물론이고 국립대학마저도 영어 강의를 교수의 승진 또는 재임용 요건으로 하고 있다. 독어독문과 교수가 독일 시문학을 영어로 강의해야 하는 웃지 못할 일이 지금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다. 교수 채용에서도 영어 발표를 필수로 하고 있다.


중국철학과 교수를 채용하는데 중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자보다 미국 유학자가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지금의 현실을 그저 코미디로 봐야 하는 것인지 개탄스럽다. 영어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는 거의 바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책에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교육부나 대학 당국의 의도가 무엇인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학생들의 영어 능력 향상을 위한 것이라면 원어민 교수가 강의하는 어학 강좌를 늘리면 된다. 


외국 유학생 유치를 위해 영어 강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외국 유학생이 대한민국에서 공부하려면 우리말을 배워 공부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지 어찌하여 그들을 위해 영어로 강의를 해야 하는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필자가 소속된 성균관대는 매년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글백일장을 개최한다. 한글로 글을 쓸 뿐만 아니라 모든 대회 진행을 영어가 아닌 우리말로 한다. 그래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대회의 국제적 위상이 떨어지기는커녕 매년 그 관심이 커지고 있다.


동양사상을 영어로 강의하는 것이 국제화가 아니다. 기숙사를 비롯한 학생들의 편의시설과 장학제도 등을 확충해 외국인들이 우리 대학을 찾아오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국제화다. 한국 학생도, 외국 학생도 모두 알아듣지 못하는 '콩글리시' 영어 강의를 의무화하고, 영어 강좌의 개수를 형식적으로 늘리는 것이 우리 대학의 국제화 경쟁력을 높이는 게 아니다. 


이러한 대학의 영어만능주의 여파는 지금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전달돼 아이들의 영어 공부를 위해서라면 가족의 어떠한 희생도 불사하겠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영어 사대주의'를 넘어 거의 '영어에 미친(?) 대한민국'이 돼버린 것은 아닌지 한글날 아침 우리 모두 깊은 반성이 필요하다.


매일경제 2015. 10. 9 매경의 창

http://news.mk.co.kr/news_forward.php?domain=news&no=963943&year=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