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은 나무는 또 굽은 나무를 쓴다…曲木求曲木
오늘은 유엔이 정한 '세계 반부패의 날'이다. 2003년 12월 9일 멕시코 메리다(Merida)에서 유엔 반부패 협약이 조인된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벌써 10여 년 넘게 이어온 기념일이지만 이번에는 그 의미가 특별하다. '최순실 게이트'라는 전대미문의 부패 스캔들로 온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고, 대한민국 접대·청탁 문화의 패러다임을 단박에 바꾼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과수, 축산, 화훼 농가와 음식점들이 급격한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교수들은 학술세미나 발표·토론은 물론이고 신문 기고까지도 일일이 신고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래도 부패를 없애려면 이 정도는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고 믿으면서 김영란법이 잘 정착되도록 진지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와 부산 엘시티 사건을 보면서 우리의 3만원, 5만원짜리 노력이 무슨 소용이 있을지 그저 자괴감이 들 뿐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보다 정유라의 이대 부정 입학이 우리를 더 분노하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반칙은 사람들을 화나게 하고, 특히 저항할 수 없는 반칙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반칙에는 항상 부패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아무리 길게 늘어선 줄이라도 반칙 없이 한 사람에게 한 장의 표만 팔 것이라는 믿음만 있으면 우리는 기다림의 불편함을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 반칙으로 줄에 끼어들면 질서는 한순간에 무너지고 아수라장이 될 수밖에 없다. 아수라장에는 원칙도 질서도 없고 오로지 부패와 편법만이 난무할 뿐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세계 부패지수 평가에서 하위권을 맴돈다. 국민권익위원회라는 부패방지기구가 있고 뇌물, 횡령, 자금세탁 등을 범죄로 처벌하는 법률도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반부패점수가 그리 낮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매번 낮은 순위를 기록하는 것은 내외국인들의 의식조사 점수가 매우 낮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순실 게이트 같은 권력형 부패사건이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줄곧 있어 왔기 때문에 국민의 부패 체감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굴지의 대기업 회장들과 대통령 친인척들이 부패 스캔들로 인해 구속되거나 국회 청문회에 불려 나오는 장면이 국제 뉴스로 전 세계에 중계되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으므로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들의 반부패 평가도 그리 좋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반부패지수만큼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는 것 중 하나가 행복지수다. 다른 나라에 비해 소득이나 기반시설이 그리 열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국민이 그다지 행복하게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부패와 반칙으로 인한 좌절감이다. 부패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권력은 부패를 초래하고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게 돼 있다. 제멋대로 자란 대나무는 만 그루라도 잘라 내야 한다'고 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외침이 아니라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의한 민심의 이반(離反)'이라는 경고했다.
관중(管仲)이 쓴 관자(管子)라는 책에 '곡목구곡목(曲木求曲木)'이라는 말이 있다. 마구간 우리를 만들 때 처음에 굽은 나무를 쓰게 되면 다음에 이어서 붙일 나무도 굽은 나무를 쓸 수밖에 없어서 결국은 마구간 전체가 구부러진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직목(直木)과 같은 청렴한 인물을 쓰지 않고 곡목(曲木)을 쓰면 그다음 번에도 곡목을 쓰게 되어 결국은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경고다. 이 땅에 다시는 권력형 부패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멋대로 자란 대나무' 정치꾼과 청렴한 직목(直木)의 정치 지도자를 이번에는 반드시 가려내겠다는 다짐을 '세계 반부패의 날'인 오늘 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매일경제 2016. 12. 9 매경의 창
http://news.mk.co.kr/newsRead.php?no=851813&year=2016
굽은 나무는 또 굽은 나무를 쓴다…曲木求曲木
오늘은 유엔이 정한 '세계 반부패의 날'이다. 2003년 12월 9일 멕시코 메리다(Merida)에서 유엔 반부패 협약이 조인된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벌써 10여 년 넘게 이어온 기념일이지만 이번에는 그 의미가 특별하다. '최순실 게이트'라는 전대미문의 부패 스캔들로 온 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고, 대한민국 접대·청탁 문화의 패러다임을 단박에 바꾼 '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과수, 축산, 화훼 농가와 음식점들이 급격한 매출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교수들은 학술세미나 발표·토론은 물론이고 신문 기고까지도 일일이 신고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그래도 부패를 없애려면 이 정도는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고 믿으면서 김영란법이 잘 정착되도록 진지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와 부산 엘시티 사건을 보면서 우리의 3만원, 5만원짜리 노력이 무슨 소용이 있을지 그저 자괴감이 들 뿐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보다 정유라의 이대 부정 입학이 우리를 더 분노하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반칙은 사람들을 화나게 하고, 특히 저항할 수 없는 반칙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반칙에는 항상 부패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아무리 길게 늘어선 줄이라도 반칙 없이 한 사람에게 한 장의 표만 팔 것이라는 믿음만 있으면 우리는 기다림의 불편함을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 반칙으로 줄에 끼어들면 질서는 한순간에 무너지고 아수라장이 될 수밖에 없다. 아수라장에는 원칙도 질서도 없고 오로지 부패와 편법만이 난무할 뿐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세계 부패지수 평가에서 하위권을 맴돈다. 국민권익위원회라는 부패방지기구가 있고 뇌물, 횡령, 자금세탁 등을 범죄로 처벌하는 법률도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반부패점수가 그리 낮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매번 낮은 순위를 기록하는 것은 내외국인들의 의식조사 점수가 매우 낮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순실 게이트 같은 권력형 부패사건이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줄곧 있어 왔기 때문에 국민의 부패 체감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굴지의 대기업 회장들과 대통령 친인척들이 부패 스캔들로 인해 구속되거나 국회 청문회에 불려 나오는 장면이 국제 뉴스로 전 세계에 중계되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으므로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들의 반부패 평가도 그리 좋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반부패지수만큼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는 것 중 하나가 행복지수다. 다른 나라에 비해 소득이나 기반시설이 그리 열악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국민이 그다지 행복하게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부패와 반칙으로 인한 좌절감이다. 부패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권력은 부패를 초래하고 절대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게 돼 있다. 제멋대로 자란 대나무는 만 그루라도 잘라 내야 한다'고 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도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외침이 아니라 공직자의 부정부패에 의한 민심의 이반(離反)'이라는 경고했다.
관중(管仲)이 쓴 관자(管子)라는 책에 '곡목구곡목(曲木求曲木)'이라는 말이 있다. 마구간 우리를 만들 때 처음에 굽은 나무를 쓰게 되면 다음에 이어서 붙일 나무도 굽은 나무를 쓸 수밖에 없어서 결국은 마구간 전체가 구부러진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직목(直木)과 같은 청렴한 인물을 쓰지 않고 곡목(曲木)을 쓰면 그다음 번에도 곡목을 쓰게 되어 결국은 나라를 망하게 한다는 경고다. 이 땅에 다시는 권력형 부패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멋대로 자란 대나무' 정치꾼과 청렴한 직목(直木)의 정치 지도자를 이번에는 반드시 가려내겠다는 다짐을 '세계 반부패의 날'인 오늘 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매일경제 2016. 12. 9 매경의 창
http://news.mk.co.kr/newsRead.php?no=851813&year=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