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감사원의 정책감사 유감

2017-04-07

감사원의 정책감사 유감


항아리에 담아둔 물은 오래 두면 썩는다. 하지만 오랫동안 항해하는 선박의 탱크에 저장된 물은 상하지 않는다. 출렁이는 파도가 물탱크를 쉬지 않고 적당히 흔들어주기 때문이다. 적절한 감시와 통제는 공직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를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감사원의 존재와 역할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요즘 감사원이 그 본래의 사명에서 벗어나 오히려 공직사회를 경직화시키고 창의적 국가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최근 감사원이 국민권익위원회에 대해 '음주운전 행정심판제도 운영 부적정' 감사 결과를 통보했다는 보도를 보고 경악스럽기까지 했다. 


권익위가 음주운전 사건 행정심판에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의 행정처분 기준보다 완화된 내부 처리 기준을 수립·적용했다는 것과 법원의 음주운전 사건 구제율(인용률)은 3.3%인데 행정심판 인용률은 18%나 돼 법원에 비해 구제 비율이 너무 높다는 것을 지적했다. 


언뜻 보면 권익위가 무엇을 많이 잘못한 것 같고 감사원이 감사를 잘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내용을 좀 더 세밀히 살펴보면 감사원의 이 같은 지적은 법리에 전혀 맞지 않는 엉터리 감사다. 행정심판은 행정청의 처분이 위법한 것은 물론이고 부당한 것까지도 구제해주는 제도다. 따라서 행정심판위원회는 시행규칙의 행정처분 기준에 구속됨 없이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민원인(청구인)의 어려운 사정을 참작하여 구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그것이 행정심판제도의 존재 이유다. 시행규칙의 행정처분 기준은 행정조직 내부의 사무처리 기준에 불과하므로 처분청도 구체적 사정에 따라 민원인의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하여 재량적 처분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감사원이 무서워 그냥 처분 기준에 따라 기계적으로 처분을 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권익위마저 그 사무처리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해버린다면 국민권익 구제제도인 행정심판을 운영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행규칙의 행정처분 기준을 완화한 심판 기준을 권익위가 별도로 운영했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고 하니 참으로 참담하다.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법원에 비해 행정심판의 음주운전 사건 구제 비율이 높다는 지적이다. 법원에 음주운전 사건의 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행정심판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따라서 법원의 구제 비율이 3.3%라는 의미는 행정심판에서 구제해주지 않은 사건을 법원이 또다시 3.3%나 구제해주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행정심판이 법원에 비해 음주운전자를 더 관대하게 구제해주었다는 감사원의 지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당황스럽다. 


감사원의 과도한 정책감사가 공직사회를 복지부동하게 하고 창의적이고 선제적인 행정을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외부전문가의 정책자문과 법전문가의 법리적 검토를 통해 결정된 처분에 대해서도 감사원이 시정을 지시하면 해당 기관은 감사원의 시정 요구에 따라 처분을 다시 할 수밖에 없다. 처분 변경으로 손해를 입은 상대방은 당연히 이에 불복하여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이다. 하지만 행정소송에 대한 대응과 비용은 감사원이 아닌 처분청이 부담해야 한다. 행정소송에서 민원인이 승소했다면 처분청의 당초 처분이 맞는 것이고 감사원의 지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감사원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감사원에 정책감사의 권한이 있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헌법이 감사원에 부여한 권한은 '회계검사와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감찰'이다.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감사원에 정책의 타당성과 적절성을 판단하라고 권한을 부여한 적이 없다. 그뿐만 아니라 정책감사를 할 수 있는 전문성과 능력도 부족하다. 감사원은 헌법상 부여된 본래의 기능인 회계검사에 집중해야 한다. 감사원의 어설픈 정책감사 때문에 행정부처와 공공기관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후진적 구습이 하루빨리 청산되어야 한다.


매일경제 2017. 4. 7 매경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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