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 이제는 경제다

2017-05-12

이제는 경제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고 탄생한 정부다. 그만큼 새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 또한 높다.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로 대별되었던 세대 간 갈등의 골은 생각보다 깊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안보 문제도 심각하다. 이처럼 새 정부는 상처 입은 국민들의 마음도 보살펴야 하고 한반도의 군사적 위기상황도 하루빨리 해소해야 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시급한 문제는 경제다. 국민통합과 국가안보는 새 정부가 긴 호흡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지 지금 당장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시기를 놓치는 단기 처방이 필요한 과제는 아니다. 하지만 경제문제는 다르다. 경제정책의 기본방향과 구체적 실행계획을 내놓음으로써 불확실성을 하루빨리 제거해야 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미·중 간 무역 및 환율 전쟁, 미국의 금리 인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브렉시트(Brexit) 등 글로벌 악재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거의 반년 이상의 시간을 정치적 혼란으로 인한 불확실성으로 경제정책의 방향을 잃고 있었다. 


제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세계 각국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때도 우리는 그저 발만 동동거리고 있었다.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해야 할 굴지의 기업들은 최순실 게이트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경영책임자가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느라 경영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경제민주화 논쟁이 또다시 재연되고 지난 정부의 노동개혁이나 규제철폐 정책을 일괄 폐기해 버린다면 그나마 힘겹게 버티고 있는 한국 경제가 더 깊은 수렁 속에 빠질지도 모른다. 


선거과정에서는 지지 세력의 결집과 표 확장을 위해 조금은 과격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놓을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되면 자신의 지지 세력만의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선거 기간 중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새 정부에 바라는 경영계 정책건의서'를 각 정당 대선후보에게 전달한 적이 있다. 새 정부 경제팀이 참고할 가치가 충분하다. 경총의 정책건의서는 '경제위기 극복과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 정부가 일자리 최우선의 경제운용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핵심 경제정책 방향으로 활기찬 시장경제와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 상생의 노사관계, 효율적인 일자리 정책, 지속 가능한 사회보장·안전 시스템을 제시했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공공 부문의 청년 의무고용비율을 높이거나 민간 기업에 고용지원금을 교부하는 것은 그야말로 미봉책에 불과하다. 시장경제질서의 헌법적 가치가 보장되고 경제정책의 불확실성이 제거되어 기업의 투자가 확대돼야만 진정한 의미의 일자리가 늘어난다. 해야 할 일이 없는데 일자리만 억지로 만드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다. 해야 할 일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대립과 갈등 구조 속에서는 기업의 투자 확대를 기대하기 어렵다. 신뢰와 상생의 분위기가 확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경제정책의 기본 방향을 명확히 제시해서 시장의 신뢰를 조성해야 한다. 하지만 시장에 대한 과도한 개입은 자제해야 한다. 정부가 모든 것에 다 개입하고 관여하려는 후견인적 생각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또한 기업·성장 중심이니 노동자·분배 중심이니 등의 이분법적 편 가르기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기업과 노동자, 성장과 분배는 대립의 개념이 아니라 동전의 앞뒷면처럼 상생의 파트너다. 언론이나 정치세력들도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편 가르기로 국민통합을 가로 막아서는 안 된다. 지금 국민들은 피로하다. 드라마틱한 반전보다는 뻔한 해피엔딩이 필요한 때다. 새 정부의 안정감 있는 경제정책을 기대한다.


매일경제 2017. 5. 12 매경의 창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7&no=316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