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공수처 빨리 폐지해야 할 사유 넘친다

2021-12-29


[문화/포럼] 공수처 빨리 폐지해야 할 사유 넘친다


김민호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우려가 현실이 됐다. 많은 지식인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설치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수없이 경고한 바 있다. 여러 이유 중에서도 가장 우려되는 것이 공수처가 감시·사찰 기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비리 행위에 대한 첩보 수집을 명분으로 공직자를 광범위하게 감시하고 민간인을 무분별하게 사찰할 수 있음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이런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공수처 설치를 강행했다. 공수처가 설치·운영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런 우려가 현실이 돼 버린 것이다.

공수처는 자신들의 수사 편향성을 비판한 기자들에 대해, 수사 대상이 아닌데도 통신 영장을 발부받았고, 현 정권에 비판적인 학회 회원과 야당 의원에 대해서도 무더기로 통신 자료를 조회했다. 이성윤 고검장 관용차 에스코트 조사 영상을 보도한 TV조선 기자들과, 이 고검장 공소장 내용을 단독 보도한 중앙일보 기자, 그리고 이들 기자의 모친·동생·지인들까지도 통신 자료가 조회됐다는 보도가 있다. 공수처가 무차별 통신 조회를 한 대상은 문화일보 사회부 법조팀 취재기자 3명을 포함한 기자 120여 명, 야당 정치인 39명, 학자·변호사 등 민간인 3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논란이 커지자 공수처는 “주요 피의자의 통화 상대방을 확인하는 것은 적법 절차”라고 항변했다. 황당한 변명일 뿐이다. 피의자의 통화 상대방을 확인만 하면 되는데 피의자와 전혀 관계 없는 기자·학자들의 통신 자료를 왜 확인했는지, 동일인의 통신 자료를 왜 반복해서 여러 차례 조회했는지, 그것이 정말 적법한 절차인지 되묻고 싶다.

통신 자료 조회는 수사기관이 통신사에 특정 휴대전화 번호에 대한 정보를 요구해 가입자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의 개인정보를 넘겨받는 것을 말한다. 피의자의 상대방 확인을 위한 적법적 통신 자료 조회마저도 위헌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도 그 제도의 철폐를 권고한 바 있다. 이처럼 적법한 통신 자료 조회도 위헌성 시비가 있는 상황에서 그 범위를 벗어난 저인망식 통신 자료 조회가 적법했다는 공수처의 해명은 기가 막힌다.

국민적 관심사가 큰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서 속 시원한 수사 결과를 내놓긴커녕 권력에 비판적인 민간인이나 사찰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는 공수처는 지금이라도 해체가 답이다. 공수처를 폐지하는 방법은 헌법재판소가 위헌결정을 하거나 국회가 법률을 개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헌재는 공수처의 설립과 운영 근거를 정한 법률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이미 해 버렸기 때문에 헌재의 역할을 기대하긴 어렵다. 당시 헌재는 ‘공수처는 행정부에 속한다고 봐야 하므로 헌법상 권력분립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권력기관인 공수처가 헌법상 소속도 없이 다른 헌법기관(국회, 법원 등)을 통제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비판은 여전하다.

남은 방법은 국회가 법률로써 공수처를 폐지하는 것뿐이다. 여야 대선 후보가 이를 적극 검토해서 공수처 폐지가 양당 대선 후보 모두의 공약에 포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공감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치권, 특히 대선 후보들이 이 문제에 대해 적극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국민의 뜻을 모아야 할 때다.



출처: 2021. 12. 29.일자 칼럼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122901073111000002